멕시코 APEC에서의 대북 핵 관련 한·미·일 정상회담은 ‘선 핵포기, 후 대화’로 가닥을 잡았다. 후속조치는 내달 첫주 도쿄에서 열릴 대북정책감독그룹(TCOG) 회의, 내달 10∼12일 서울에서 가질 제2차 민주주의공동체(CD)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한·미 외무회담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하나, 그 내용은 경수로공사의 일시 중단 등 다각적 경제제재와 평화적 해결시한이 비중있게 논의될 게 거의
확실하다.
북측이 제안한 북·미불가침조약 제의는 백악관 대변인이 일축한데 이어 부시가 ‘북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을뿐 정상회담에선 논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북·미불가침조약은 종전의 평화협정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전협정을 무효화시켜 정전협정에 기반을 둔 유엔사령부를 해체케 하고 나아가 미군철수를 도모코자 하는 불변의 대남전략인 것이다. 고려연방제 주장과 마찬가지로 북의 남침으로 또 전쟁이 일어나도 내전으로 간주, 미국 등의 개입을 차단하자는 것이 이른바 북·미불가침조약에 깔린 노림수다.
평양정권이 제한적 시장경제 도입을 모색하면서도 본질적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인권문제를 포함한 체제 인정 등을 대미 핵무기 위협으로 빅딜하려 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모험이다. 북의 핵무장은 중국도 반대한다. 제네바협정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외세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남북의 동포를 위한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체제안정 수단으로 핵무기 위협을 일삼는 건 결국 남북 동포를 불행하게 한다. 본란이 북의 핵 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양정권은 상투적인 벼랑끝 전술보다는 이젠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일원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 경제지원 등에 훨씬 더 큰 실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에도 할 말은 있다. 멕시코에서의 정상회담은 북의 핵무기 포기 압박 수단으로 미국과 일본이 경제지원 중단 등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대북지원을 북의 핵문제와는 별도로 취해온 대북정책을 앞으로는 어떻게 조율 할 것인지 국민에게 밝힐 책임이 있다. 정부는 북의 핵 시인은 대화용이며, 켈리 특사의 전언은 과장이라는 등 대안없는 유화 표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같은 태도가 주변국의 대북관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가 이번 멕시코 회담에서 확인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좀 더 현실적인 타개책을 강구해 보여야 하는 것이 귀국해서 가져야 할 최우선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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