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호 (경기도여성회관 관장)
나는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150여통 간직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받은 것으로 1966년부터 1976년 사이의 편지다. 내가 생각해도 36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사를 여러번 했고 결혼 후까지도 보관하고 있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편지는 다양하다. 아름답게 그림을 그린 엽서에서부터 선화지, 내 키만큼 긴 160㎝ 두루마리에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낸 것 등 다채롭다. 수녀님의 편지는 수녀가 돼라는 내용이었고, 나의 약혼식을 성당에서 해주신 신부님은 ‘금년에는 귀여운 옥동자를 얻으라’는 내용을 보내주셨는데 그 해에 정말로 첫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준 친구가 있다. 무려 82통이나 된다. 1966년 내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한 해부터 결혼한 해까지 보낸 편지다. 동갑내기인 그 친구는 기관은 다르지만 업무 내용이 같아서 한달에 한번은 상급기관 회의에서 만나곤 했다. 또 1년에 한번은 1주일간 합숙훈련을 받기도 해 친하게 지냈다. 잠시 못만나면 서로 편지를 쓰곤했는데 항상 아름다운 내용으로 단둘이 만나서 대화하는 것 같이 잘 썼다. 그래서 나는 어느 기회가 오면 이 아름답고 소중한 글을 책으로 엮어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이 기회에 한 소절만 소개할까 한다.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보니 추억이 아름답고 모든 편지들이 아주 소중하다고 여겨진다. 역시 보관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맑은 하루가 간다. 언제 또다시 오늘이 올지… 푸른 하늘에 기약해 볼까? 그간 안녕? 요 깍쟁이, 나 보고 싶지도 내 얘기 듣고 싶지도 않니. 난 얼마나 보고싶고 너의 얘기 듣고 싶은데. 기다리마. 긴긴 얘기 가득 실은 너와 그리고 이야기를…”- 점례가.
또 한해가 아쉽게 저물어가는 이즈음, 추억을 더듬으며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성이 가득담긴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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