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거듭 태어나는 계기로

11월12일은 한국 국회 의정사상 가장 창피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는 지난 7일과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47개 법안이 정족수 미달인 상태에서 처리된 것이 말썽이 되어 국민적 비판이 제기되자 이를 12일 본회의에서 다시 상정하여 47개 법안을 재의결하는 의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11월12일은 한국 국회가 거듭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회는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설령 의결정족수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도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킨 사례가 많으며 정기국회 막바지에는 수십개의 법안을 이번과 같이 의결정족수를 계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불법의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국회는 이를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국민의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그대로 법률로 확정, 행정부에 이송하였다. 심지어 회의장 주변이나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의원들까지 의결정족수에 포함시키는 것이 관행이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동원하였을 정도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며 국민을 우습게 아는 처사이고 또한 국회의원의 직분을 망각한 한심한 행태인가.

그러나 국민의 호된 질책과 박관용 국회의장의 결단에 의해 국회가 이번 표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문제가 된 47개 법안을 재의결한 것은 의회정치 발전을 위하여 참으로 올바른 태도이다. 특히 국회의장이 이례적으로 사과 성명서까지 발표하고 앞으로 재발방지 약속과 더불어 이의(異議) 유무를 묻는 표결방법을 폐지하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이번 사건이 오히려 의회발전을 위하여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고 더구나 국민의 삶의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을 제정하는 입법기관이다. 국회의원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뒤늦게나마 국회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받은 것은 국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불행중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더 이상 국회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지 말고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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