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
주막(酒幕)은 글자 그대로 막을 쳐놓고 술을 파는 정도의 길가 주점이다. <고려사>의 기록에 주막은 고려 성종 때부터 있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였으며 술과 음식을 팔았다. <고려사>에는 당시 술을 팔던 풍속은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는다. 하지만 한말의 문헌이나 풍속화를 보면 주막은 탁주를 담은 술항아리, 항시 물이 끓고 있는 부뚜막의 검은 큰 가마솥, 그 곁에 앉아서 술을 떠주는 주파(酒婆)등이 인상 깊은 우리네 주점의 모습이다.특히 겨울철 추위에 거냉한 탁주는 요기와 어한으로 애용돼 우리의 주점은 따뜻한 정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
근년에 이르러 도시의 뒷골목이나 도롯가 으슥한 곳에 노점처럼 나타난 포장마차의 술집에서도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정이 오고 간다. 주로 닭똥집·닭다리 요리, 꽁치구이 등을 안주로 하여 소주를 판다.
주막과 비슷한 목로주점도 있다. 기다랗고 좁은 널빤지로 만든 술상이 목로인데 이곳에 큰 막걸리 사발을 놓고 의자도 없이 서서 술을 마시므로 ‘선술집’이라고 하였다. ‘사발막걸릿집’또는 ‘대폿집’이라고도 했는데 1960년대 때까지만 해도 도시에 선술집이 많았다. 지금은 의자를 두고 소주를 팔고 있어 선술집이니 대폿집의 느낌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술의 이미지는 농가에서 마시는 푸짐한 막걸리, 즉 농주에 있다. 길손을 불러 술을 같이 하고, 이웃집 어른과 친구를 불러 나누어 마시는 것이 농주다. 양조업이 산업화된 이래 양조장의 탁주가 농주로 일반화되어 왔지만 종전 농가에서 주부들이 빚은 가양주 맛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몇년 전 수원시가 화성(華城)의 사대문 중 하나인 화서문(華西門) 안쪽에 옛 정취를 풍기는 주막거리를 조성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초가집 주막 한채만 지어 놓고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주막을 십여채 더 짓고 실제로 막걸리와 국밥, 안주를 판다면 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 찾을 수원의 명소가 될텐데 아쉬움이 크다. 만추의 나무들이 마치 성자같은 요즘같은 날 주막에 앉아 거냉한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지지대子만이 아닐 것이다. 눈(雪)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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