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정치개혁 관련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했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 비리척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다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정치개혁 특위 협상에서 정치자금 투명화 방안 등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민주당은 비리척결 방안을 논의하는 국회 법사위 소위원회 모임에 불참했다. 결국 정치개혁 관련 입법은 당리당략에 밀려 무산되고 말았다.
예컨대 한나라당은 선거법 개정에 대선을 한달 남짓 앞두고 게임의 틀을 크게 바꾸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민주당의 미디어선거 확대와 정당연설회 폐지만이라도 합의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 민주당은 현 대통령을 의식, 부패방지법 개정에 특정 대상을 명문화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면서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토록 하자는 한나라당의 수정 제의마저 반대했다.
국회법, 인사청문회법, 선거관계법, 정당관계법 등 그 어느 것 하나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했다. 그간의 정치개혁 구호가 구두용이었을뿐, 정작 개혁의 의지는 없었다는 것 밖에 안된다. 대통령 선거는 오는 27일부터 공식화 된다. 정치개혁 입법을 다시 논의할 시일이 이젠 사실상 없다. 정치개혁을 말로만 무성하게 늘어놓고 반개혁적 환경 속에 선거를 맞이할 지경이 됐다.
정치권은 한마디로 국민을 농락했다. 자기들이 먼저 해 보여야 할 정치개혁은 외면하고는 표만 달라고 한다. 검은 돈의 정치권 유입을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 돈 안드는 대선 등을 접어 둔채 말로는 지금도 별의별 소릴 다 한다. 정몽준 대선후보를 낸 국민통합21도 자유로울 수 없다. 원내 교섭단체를 갖지 못해 정치개혁 입법의 협상 대상에 들지 못했다 하여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명색이 대통령 후보를 낸 정당이라면 정치개혁 입법에 어떤 입장을 밝히고 입법을 촉구해야 할 터인데도 수수방관으로 일관하였다. 역시 정치개혁의 의지가 있다할 수 없다.
문제는 그래도 이런 정당에서 내놓은 후보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이다. 판세가 1강2중 구도라면 이같은 전망이 불가피하다. 정치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민의 불행이다. 정치개혁의 실종에 구구한 변명이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위하다. 책임을 져 보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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