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 짓밟은 미군재판

지난 6월 여중생 2명을 치어 죽게한 미군 장갑차 관제병과 운전병에 대한 미군의 재판은 한 마디로 한국인의 인권을 재차 무참히 짓밟은 미국의 오만이다. 20일 동두천시 캠프케이시에서 있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병장에게 무죄를 평결한 데 이어 21일 속개된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 대한 주한미8군 군사법원의 재판은 이미 각본을 짜 놓은대로 진행된 것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운전병에 대한 재판도 유죄 평결 가능성이 높았던 관제병이 무죄로 평결받은 뒤여서 유·무죄 공방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으며 새로운 내용도 밝혀지지 않았다. 22일 오늘 속개돼 23일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끝으로 무죄로 마무리될 게 확실시되는 이번 재판은 우리로 하여금 자괴심을 금할 수 없게 한다.

한국측은 그동안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에 의해 피고인 2명의 신병인도를 요구해 왔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미군 영내에서 재판을 한 것은 아무리 미군측이 일부 재판과정을 공개해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미군의 주장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재판은 우리 법정에서 이뤄졌어야 했다.

이번 재판은 전적으로 ‘미군들 만의 군사 재판’이었다. 재판장은 물론 검찰관·변호인·배심원 등도 모두 미군이었다. 대령부터 하사관 등으로 구성된 배심원들 역시 피고인과 같은 주한미군들로 이루어져 애초부터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됐었다.

일부 한국검찰이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우리 측의 수사권 행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탓에 재판정에 제시된 증거들도 미군 자료에 의존한 것들이었다. 더구나 미군 피고인이 무죄평결을 받을 경우 검찰은 항소할 수 없다는 미국 군사법원 규정에 따르도록 돼있어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여러차례 지적된 바 있지만 제일 큰 문제점은 SOFA 규정이다. 현행 SOFA에서 공무중 범죄에 대해서는 미군이 1차적 재판 관할권을 기계적으로 갖도록 한 것은 지배자적인 악법이다. 결국 이번 재판은 한국이 사법적 주권을 찾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여중생 사망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피의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사태가 계속될 것이다. 피해자만 있고 피의자가 없는, 가해자가 가해자를 재판하는 모순적인 구조는 하루 빨리 고쳐져야 된다. 미군범죄에 대한 우리측 재판관할권을 대폭 강화하는 SOFA 개정이 참으로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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