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의혹 검찰수사 ‘철저’해야

정치권의 고소 고발이 제대로 사건화하는 예를 별로 본적이 없다. 대개는 수사가 유야무야하거나 아니면 고소·고발인이 취하하곤 했다. 특히 정치인이 취하할 고소 고발 남용은 국가기관을 정략적으로 악용, 불필요한 인력을 낭비케 하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다. 대북지원의 의혹이 짙은 것으로 알려진 현대상선 4천억원의 편법 대출과 관련,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취하한 예가 이에 속한다.

검찰은 또 국정원 도청의혹과 관련, 민주당 김원기 이강래의원이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을 상대로 고소한 명예훼손 혐의 사건의 수사에 착수했다. 대선 기간인데다 핵심적 참고인들이 국회의원 또는 기자들이어서 소환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는 예상한다. 그러나 어떻든 통상적 수사 절차에 따라 구체적 수사계획을 세우는 등 본격수사에 나서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검찰 수사는 도청당한 사람들의 사실파악, 도청의 기술적 부분, 그리고 도청의 실체규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원측 말대로 사설기관에서 했는지, 민주당 주장대로 한나라당의 자작극인지, 한나라당 폭로대로 국정원에서 했는지는 몰라도 도청이 있었던 것만은 부동의 사실이다. 따라서 명예훼손의 성립여부는 이의 실체적 진실의 바탕 위에서 판단돼야 한다고 믿는다.

검찰 수사를 그 어느 때보다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특검 또는 국정조사를 말하지만 가장 제대로 가는 길은 역시 검찰 수사다. 그리고 검찰 또한 이번 기회에 불신을 떨쳐냄으로써 검찰 본연의 위상을 되찾는 결연한 면모를 보여야 할 것으로 안다. 전화통화 하나 마음 놓고 못하는 세태가 무엇 때문인가를 밝혀내는 이번의 검찰 수사는 막중한 사회 여망을 안고 있다. 아울러 고소인이 설령 고소를 취하한다 해도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고소 취하로 고소인의 친고죄 혐의 부분은 제척된다 하여도 도청혐의 부분은 마땅히 인지 사건으로 다루는 것이 검찰의 소임이다. 실로 어려운 시기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이 검찰 기능의 탄력이 요구된다. 관건은 검찰의 자체 의지에 달렸다고 믿어 비장한 분발이 있기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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