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유통위원회는 농림부장관 자문기구이지만 그 동안 추곡수매가 결정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물론 자문위원회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해당부처 책임자에게 정책자문을 하는 기구이지만, 그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이기 때문에 이 기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것은 정책결정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양곡유통위원회가 내린 결정은 이를 결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책임을 미룬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런 자문위원회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양곡유통위원회는 제8차 전체회의에서 2003년산 추곡수매가를 올해보다 2%내리자는 소비자 단체의 건의안을 제1안으로, 한편 3%의 수매가 인상을 요구하는 농민단체의 건의안을 제2안으로 하는 복수안을 농림부 장관에게 건의하였다.
양곡유통위가 자체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복수안을 건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있는 일로서 과연 정부나 국회가 어떤 건의안을 채택할 지 주목된다. 농민단체와 소비자단체간의 팽팽한 이해관계가 얽혀 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건 이해하지만 명색이 전문가들이 모인 기구가 관련자들의 이해를 조정하지 못하고 건의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부에 복수안을 넘겼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농민단체들의 주장대로 3%로 수매가가 인상될 경우, 1등급 벼는 80kg 당17만2천7백50원, 수매량은 5백4만3천섬이다. 농민들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쌀수매가는 계속 인상되어야하며 최소한 내년에는 3% 정도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소비자단체들은 내년 쌀 재고량이 세계식량농업기구 권장량의 두배에 이르며 2004년 쌀 개방을 앞두고 감산노력을 해야 된다는 점을 들고 2%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양곡유통위는 지금 농민들이 얼마나 어려운 실정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지 의심스럽다. 얼마전 여의도 농민대회에서 있었던 농민들의 한 맺힌 절규를 한번이라도 들었다면 이런 한심한 결정을 했을까. 이제 추곡수매가 결정은 농림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수심에 찬 농민들은 수매가를 다소 올려 원가라도 보상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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