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판사들이 1년동안 펴내는 책이 무려 1억2천만권에 이른다. 그러나 6천만권 이상의 새책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종이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책 한권을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와 잉크, 인쇄비 등 제반경비를 4천원씩으로 산정하면 연간 2천400억원의 재화가 낭비되는 셈이다.
파주시에 있는 도서전문물류회사 야적장에는 폐기될 예정인 소설책과 시집, 컴퓨터 관련서적 등 도서 수십만권이 쌓여 있다. 수십여일동안 야적된 관계로 검은 곰팡이가 군데군데 슬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당장 서점에 진열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폐지공장으로 실려가는 책들 가운데는 이름이 꽤 알려진 출판사가 발간한 도서들이 수두룩하다. 정가가 1만9천원인 컴퓨터 관련서적 2천여권이 권당 50원에 폐지수집상에 넘겨진다. 시집은 권당 15원에 팔린다. 발간된 지 불과 1년 남짓한 새책도 판매가 부진하면 폐지재활용 공장으로 운반돼 잘게 부수어진 후 골판지 재료로 사용된다. 서점에 진열돼 있다 반품된 책도 있지만 폐기되는 책중 80%가 포장도 뜯지 않은 신간서적들이다.
이처럼 매년 수천만권의 새책이 빛을 못본 채 폐기되고 있지만 출판업계는 할인도서를 취급하는 제2의 유통시장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책이 헐값으로 유통될 경우 이미지 하락 등으로 인한 매출감소를 우려한 서점의 반발때문이다.
내년 2월부터 발행 1년이 지난 책은 할인판매가 가능하도록 출판 및 인쇄진흥법이 개정됐지만 대형서점이 출판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어서 제2유통시장 도입이 어려울 모양이다.
6천만권의 새책이 kg당 90∼100원의 헐값에 폐지수집상에 팔려 간다니 저자들이 알면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도서구입 예산이 없거나 부족한 학교나 도서관이 싼값에 구입한다면 좋을 터인데 새책이 폐지수집상에 팔려 간다는 것은 서글프고 안타깝다.
할인도서만을 취급하는 전문서점들이 있는 일본처럼 한국에도 할인도서 판매서점이 생겨야겠다. 신간서적의 폐지재활용 공장행은 곧 지식과 예술이 사장되는 비극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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