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이란 게 마치 길거리에서 다투어 바겐세일하는 ‘길표’상품화 했다. 한나라당이 약40조원이 드는 행정수도 이전을 단 6조원으로 하겠다는 민주당 공약은 황당하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교육재정을 국내총생산(GDP)의 7%로 끌어 올리겠다는 한나라당 공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공격에 나섰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20일 군복무기간 2개월 단축을 발표한데 이어 민주당은 8일 4개월 단축을 들고 나왔다. 당초 한나라당 발표를 현실성이 없다며 일축했던 민주당이 며칠 전 긴급회의 끝에 한나라당보다 한 술 더 떠 2개월을 더 감축하는 공약을 급조해 냈다. 한나라당은 경로연금 5만원을 7만~8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하자, 민주당은 1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노 후보가 조계사를 찾아 북한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 순환도로 백지화를 약속하자, 한나라당이 덩달아 불교계 공약으로 똑같은 약속을 했다고 비난한다.
공약 중복은 이밖에도 법인세 인하, 경제성장률, 국방예산 등을 비롯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다. 이 바람에 서로가 자기 것을 베꼈다면서 상대 당을 ‘베끼기 원조’라고 힐난한다. 그저 표만 되겠다 싶으면 이든 저든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공약이 무슨 실효가 있겠나 싶어 걱정된다. 베껴도 이건 아예 안면 몰수까지 하는데는 놀랍다.길에서 옷가지 등을 싸잡아 팔면서 한쪽이 3천원을 호가하면 곁에선 2천원을 부르는 상도의도 모르는 싸구려 장사꾼을 연상케 한다.
따지고 보면 유권자를 기만한다기 보다는 농락하는 거나 같다. 윌슨 미국 대통령 때 정치가이며 재정가였던 바루크는 선거공약에 대한 역설로 ‘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에게 투표하라,그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탕발림 공약은 공약이 아닌 독약이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미마과도 같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진(秦)나라의 잡다한 악법을 폐하면서 밝힌 공약삼장(公約三章)하나로 천하의 민심을 얻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 그렇게는 될수 없지만 사람이 사는 이치는 비슷하다.대선공약 베끼기 홍수는 그 자질을 의심케 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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