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妃의 戀書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가에 살던 창녀였다. 그가 뭇사람들에게 돌팔매 질을 당할 때, 예수가 “너희들 중 참으로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던져라!”고 했던 얘기는 유명하다. 그 뒤 예수의 부활을 맨 먼저 보고 제자들에게 알렸던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다.
엘리자베스 1세(1819∼1603)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영국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여왕이다. 정치 및 경제개혁 역시 크게 성공했다. 평생 처녀로 지냈지만 알고 지낸 남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데브루는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총독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거역, 제멋대로 휴전하자 파면하고 궁중출입을 금지시켰다. 이에 불만을 품고 시민 봉기를 일으킨 데브루를 체포한 여왕은 비록 애인었으나 단두대에 세우는서릿발 같은 면모를 보였다.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아프카니스탄전쟁, 크림전쟁, 남아프리카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사해에 떨린 유니언잭이 해질 줄 모르는 식민지를 개척했다. 마흔살 때 높은 교양과 깊은 학식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던 남편 알버트와 사별하고 우울증에 빠진 여왕을 구해준 사람은 왕실 사냥터지기 존 브라운이었다. 이무렵 빅토리아 여왕과 브라운이 신분을 초월해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브라운 후손의 집에서발견된 사실이 수년전 더 타임스에 보도됐었다. 기병대 장교 출신인 제임스 휴이트는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쫓기는 자동차 사고로 비명에 간 다이에나 영국 왕세자비의 혼외 애인이다.
1986년부터 5년이나 사귀다가 1991년 세상에 알려지자 헤어졌다. 이러한 휴이트가 다이에나로부터 받은 연애편지 64통을 우리 돈으로 약200억원인 1천만 파운드에 팔겠다고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혼외 정사는 물론 지탄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호가 불가능하다. 다만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보호했던 것처럼, 그 입장을 이해하러 한다면 그들만의 입장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세인의 지탄을 감수할 각오를 해가며 불륜이긴 해도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나눈 연서를 상품으로 내놓은 휴이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빅토리아 여왕의 연서를 받은 브라운의 후손들은 내용의 공개도 거부한 채 가보로만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다이애나는 왕세자비의 자리까지 내던지도록 사랑했던 상대의 남성을 아무래도 잘못 선택했던 것같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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