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파동, 당내갈등,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의 단일화, 정 대표의 지지철회 등 파란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대권을 박빙의 차이로나마 현실로 품에 안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참다운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말은 말뿐이었다. 그 말을 실증해보일 책임이 당선의 영광보다 훨씬 더 무겁다. 따라서 당선자에 대한 의문과 기대와 당부가 많다.
재계를 적대시하는 경제관,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하는 근거, 개혁의 실체, 정계개편 및 신당 창당의 정체와 노선, 북측엔 일방적 온정주의인데 비해 미국엔 일방적 강경주의로 균형잃은 대북 및 대북정책 등 이밖에 묻고 또 해야할 말이 수없이 많다. 지역구도의 심화, 박빙의 승리에 대한 국운의 모험도 큰 부담이다.
하나, 오늘은 그런 것을 논할 계제가 아니다. 또 기회는 앞으로 허다할 것으로 믿는다. 여기선 그냥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꼭 갖춰야 할 당선자로서의 몇가지 덕목에 관해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원한을 내던져야 한다. 당선자는 특히 원한이 깊은 사람이다. 앞서 밝힌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파란 말고도 정치적으로 역경의 기복이 심했다. 정계입문후 20여년동안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차 낙선했다. 부산에서 지역적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민주당 후보 간판을 고수했다. 한동안은 당내에서 정치 미아가 되기도 했다. 어쩌다가 후보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떠올랐으나 분쟁이 심했다. 이런저런 형용키 어려울 고초는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을 쌓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젠 잊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인다. 제대로 보여야 국정 또한 제대로 수행된다. 대통령 자리는 개인의 원한을 풀기위해 있는 자리가 아니다.
둘째, 측근을 배제해야 한다. 당선을 위해 도와준 모든 사람들의 은공을 막말로 잊어야 한다. 그런 것을 일일이 기억해 두다가는 아무 일도 못한다. 부정부패 척결은 커녕 부패정권의 재판이 된다. 사람을 대할 때 내편이냐 네편이냐는 시각은 당선자를 해치고 나라를 해친다. 내편이든 네편이든 그보다는 인재냐 아니냐를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 인재가 아니면 내편이라도 멀리하고, 인재일 것 같으면 네편일지라도 데려다가 쓸 줄 아는 것이 능력있고 금도있는 참다운 치자다. 당선자가 일찍이 패거리정치·작당정치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으며, 자심한 국정문란을 가져왔는가를 익히 알았다면 다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 비결이 먼데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측근부터 배재하는데서 시작된다.
셋째, 신뢰성 확립이다. 당선자는 후보시절에 특유의 수사법으로 듣는 이들의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게 하곤 했다. 또 상황논리와 원칙논리의 이중 화술을 구사해 일관성이 결여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어떻든 과거는 그랬다. 그러나 이젠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다. 당선이 되기까지 정치인으로서 무시할 수 없었던 인기를 의식한 것이었다면 그같은 인기발언은 이제 끝내야 한다.
지금부터는 국민의 인기를 끄는 것보다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상황논리보다는 원칙논리를 앞세우는 수사법의 정리가 필요하다. 지론의 일관성이 요구되고 분명한 어휘가 있어야 한다. 전망이 예측되고 예측은 거의 빗나가지 않는 말의 책임이 지어질 때 비로소 신뢰가 돌아간다. 신뢰가 없는 치자는 아무리 좋은 소릴해도 공허하고 신뢰가 있는 치자는 듣기싫은 말을해도 부인되지 않는다. 당선의 영광보다 더 무거운 대통령의 책임을 옳게 수행하는 길이 곧 이상 밝힌 세가지 점에서 비롯되는 사실을 항시 유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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