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깨끗한 그의 은퇴

“꿈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어찌 없겠습니까만, 깨끗이 물러 나겠습니다.”재도전의 석패를 이렇게 은퇴로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세차례나 눈물이 복받쳐 한동안 말 문을 잇지 못하곤 하면서도 끝내 선언한 은퇴는 지극히 인간적이었고 보기드문 정치인의 신념있는 처신이었다.

이회창, ‘대쪽 대법관’, ‘성역을 타파한 감사원장’, 소신총리’로 평가받던 그가 이제 실패한 대통령 후보를 끝으로 야인으로 돌아갔다. 어찌 만감의 소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직자들의 간곡한 은퇴 철회 호소마저 끝내 뿌리쳤다. 돌이키면 1996년 신한국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으로 정치에 몸담은 이후 숱한 파란을 겪었다. 때로는 “정의의 목소리가 광야에 흩날려 메아리 없이 흩어져서는 안된다”며 고독한 당내 입지를 열정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고군분투 끝에 거머쥔 첫번째 대권 도전에 이어 두번째마저 실패했다. 정계입문 6∼7년에 머문 그가 ‘낡은 정치인’으로 매도된 것은 심히 억울했을 것이다. ‘당선되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공약, 사심없는 대통령상을 다짐했음에도 알아주지 못한 투표결과가 심히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어찌 회한이 이뿐이었을까만은 그는 떠났다.

“저를 믿고 사랑하고 지지해 준 국민들께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모두 제가 부족하고 못난 탓으로 죄인된 기분”이라는 말을 남겼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주어진 사명임을 굳게 믿어왔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이번에도 국민의 선택을 못받은 게 결국 다 부덕·불민한 탓으로 알고 용서를 빈다”고 했다. 패자는 구구한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 그 어떤 조건도 탓하지 않았다. 패인을 분석하자면 쌔고 쌨겠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결과에 겸허히 승복했다.

이회창, 그는 비록 투표에는 졌지만 선거에는 결코 패자가 아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나라당에 남긴 말은 가슴에 깊이 새겨 들어야 할 정치적 고명이다. “지금 당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지만 뭉치면 희망의 새길을 찾을 수 있는만큼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달라”(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및 경제안정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야 한다”면서 진정 건전하고 합리적인 개혁적 보수(정당)의 길을 당부했다. 패배의 모든 책임을 도맡아 짊어지고 은퇴한 그의 뜻이 뭣인가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부한 “부디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덕담 또한 당선자가 겸허하게 새겨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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