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대부로 ‘3전4기’끝에 브라질의 첫 좌파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당선직후 “나는 100년 이상 정권을 잡아온 엘리트 지도자들보다 이 나라를 더 잘 이끌어갈 자신이 있는 철강노동자 출신”이라고 역설했었다.
1945년 브라질의 극빈층이 모여 사는 북동부의 한 시골마을에서 빈농의 여덟번째 아들로 태어난 룰라가 구두닦이 소년시절을 거쳐 남미의 종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다.
“희망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오늘 브라질은 두려움 없이 행복한 미래를 향한 선거를 치렀습니다.”지난 10월 27일 당선이 확정된 후 상파울루 대로에서 첫 연설을 했을 때 마이크를 잡은 그의 왼손 손가락은 넷뿐이었다. 14세의 어린 나이로 철강공장 노동자 생활을 시작한 그가 1950년대 중반 사고로 새끼 손가락을 잃어서였다. 1969년에는 역시 공장 노동자였던 첫째 부인이 산업재해인 결핵으로 숨졌다. 그때부터 룰라는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다.
1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된 룰라는 1980년 노동자당(PT)을 출범시켜 1986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뽑혔다. 1989년, 1994년, 1998년 대선에 출마, 여러 후보가 싸우는 1차 투표에선 선두를 달렸으나 2차 투표에서 번번이 패했다. 급진적 노동운동가의 이미지로 인해 2차 투표에선 보수·기득권층이 똘똘 뭉쳤기 때문이었다. 룰라의 공식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인도주의에 의거한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 1863년 노예 해방 선언을 행한 위대한 정치가다.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링컨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으며 하원의원,상원의원,부통령 후보 낙선 등 쓰라린 경험을 했다.
청소년 시절의 역경과 정치인생이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브라질 룰라 대통령, 링컨 대통령의 처지가 비슷하다. 한국의 16대 대통령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처럼 청사에 길이 빛날 훌륭한 정치가가 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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