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당무 일선 퇴진은 사실상 당의 형해화다. 대선에서 한동안 만만치 않은 기세를 떨쳤던 정 대표와 당의 지난 위상에 비하면 실로 천양지차다. 단일화 패배 이후 공동정부 흥정, 지원유세 늑장 참여, 지지철회, 송구 표명 등 정 대표의 갈팡질팡한 행적은 여간 실망을 안겨 준 게 아니다. 결과론으로 나타난 그의 지지철회는 파괴력 보다는 상대의 응집력을 더 키워 주었다. 되레 주요 당직자 등 60여명이 반발, 집단 탈당으로 이어진 당의 치명상을 가져왔다.
이런 자충수 속에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에서 새 정부 인선에 배려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함량을 의심케 한다. 당선자측 입장에선 혹이 절로 떨어져 나간 셈으로 보일 것이라는 게 객관적 시각이다. 원내 의석이 정 대표 1석에 지나지 않고 스쳐간 바람으로 끝난 국민통합21이 더 서 있을 땅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러한 군소정당으로의 전락이 예견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선용 급조 정당이 성공할 수 없었던 전철이 없지 않았지만, 정 대표는 그중 가장 졸작으로 되풀이 하였다. 정 대표가 손을 뗀 국민통합21은 존립 기반을 잃어 개점 휴업을 면키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직간접으로 아까운 정치인들이 잘못된 행보끝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정 대표 역시 그런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앞으로 정계를 은퇴하든 무엇을 어떻게해 재기를 꿈꾸든 그것은 정치적 자유다. 그러나 분명한 게 있다. 신념이 없는 처신은 결코 성공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목전의 이해 관계에 급급, 협상이라기 보다는 흥정에 치우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인 건 신념있는 처신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로 나섰으면 자신을 따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질줄도 알아야 한다. 이같은 덕목을 다하지 못한데 대한 성찰도 있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나 정치권의 정치활동에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치에도 도의와 질서가 요구된다. 정 대표의 일그러진 퇴조는 정치권에 타산지석의 교훈을 일깨운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천길 낭떠러지 길이 돼 입지가 말이 아닌 것은 비단 그에 국한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가 정치 일선에서 한발 물러 서기로 한 것은 그런대로 잘한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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