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청와대 별궁'

대한민국 헌법 제90조는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둘 수 있으며,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1989년 3월 ‘ 국가원로 자문회의법’이 폐지되면서 사문화했다.

국가원로 자문회의 신설은 1987년 개헌 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강력히 희망했다. 퇴임 후 자신의 입지를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에게 총재직은 이양했지만 막후 영향력을 누리고자 했다. 국가원로 자문회의 의장은 국회의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장관급 사무총장 등 사무처 공무원이 38명이나 된다. 가히 ‘청와대 별궁’이라고 할 만 하다.

노태우 후보가 김영삼 후보를 제치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노 대통령 측근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상왕노릇을 하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 비리 등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1988년 4월13일 자문회의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자신이 유치한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도 참석못했을뿐만 아니라 백담사로 유배까지

당했다.

결과론이지만 한나라당이 12·19 대선 공약으로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부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괜한 일’이었었다. 이회창 후보가 집권할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면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으로 추대하겠다고 공약한 것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렴청정 목적으로 설치했다가 폐지한 국가원로 자문회의를 야당이 도입하려 했으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따논 당상이라고 여겼던 때 였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정치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제도적으로 불식할 겸 ‘너그러운 대통령’의 면모도 과시하는 일거양득용으로 발표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혹시 김대중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이회창 후보의 낙선으로 좋은 자리(‘청와대 별궁’)를 놓쳤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들이 국정에 참견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새 인물들은 전국 도처에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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