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정치

고구려의 강력한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 후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제일 먼저 장악했던 궁예(弓裔), 원나라의 침탈기에 자주적 개혁을 시도했던 고려의 공민왕(恭愍王), 임진왜란 직후 왕권 강화를 추진하다가 쫓겨난 조선의 광해군(光海君), 개화기에 갑신정변을 주도한 후 이국 땅에서 살해된 김옥균(金玉均), 역시 개화기에 개혁을 서둘다가 임금과 백성에게서 버림받은 김홍집(金弘集), 광복 직후 제1인자로 군림했으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피살된 여운형(呂運亨), 4·19혁명으로 들어선 민주정부를 이끌다가 군사쿠데타에 의해 물러나야 했던 장면(張勉) 등 8인을 역사연구자들은 ‘실패한 정치가’로 분석한다. 연개소문이나 궁예처럼 지나치게 독선적인 경우 실패하였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독점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권력은 10년을 가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이나 김옥균, 김홍집처럼 국내 역량의 결집을 소홀히 한 채 대외관계에만 주력한 경우에도 위험에 처한다. 내부의 반발에 부닥칠 뿐만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도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실패한다. 광해군의 경우 중국의 명청(明淸) 교체기를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자신을 잡으려는 쿠데타군이 왕궁에 진입하자 어느 누구도 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여운형이나 장면은 위급한 사태에 대처할 치밀한 사고방식과 결단력을 갖추지 못한 지도자로 학자들은 지목했다.

여운형은 당대의 호걸이었고, 장면은 교육자 겸 종교인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위기의 사태에는 기민하게 대처하며 혼란을 극복하는 데는 적절한 성품이 아니었다고 본다. 공민왕처럼 예술적 감성과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도 냉철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정치가로서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8인은 격동의 시기를 살며 지도자의 위치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다가 실패자로 한어지는 굴곡의 과정을 겪었다. 자기 나름의 이상을 가지고 현실을 앞서가며 개혁을 주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죽음을 맞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핵심 측근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과거 정치지도자들의 행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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