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살생부 파문, 한나라당의 인수위법안 발목잡기는 정당개혁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살생부 파문은 그런 걸 만들어 유포한 것도 잘못이지만 구 주류측의 과민한 대응 역시 현명하지 않다. 물론 구 주류측이 짐작하는 진원지의 의심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낱 괴문건을 두고 당내 최고 기구에서까지 격론을 벌인 것은 품격에 걸맞지 않다. 고소로 끌고 가는 것은 무시해버리면 될 괴문건을 준공식화하는 우둔한 처사다. 살생부를 두둔해서가 아니다. 근래 성행되고 있는 인터넷 테러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평당원도 아닌 지도층 인사가 이런 것에 발끈해 보이는 것은 정치인다운 금도가 아니다.시비 삼을 가치가 없는 일을 두고 시비 삼기보다는 얼굴없는 테러의 해프닝으로 쳐 아예 무시해 보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갖는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법안과 인사청문회법안 처리에 의혹사건과 연계를 고집하는 것은 당치않다. 두 법안 처리는 오는 2월25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 정치가 협상이긴 하나 한나라당의 고집은 협상의 범주를 일탈한다. 새 정부 출범은 국가 차원의 막중 대사다. 국가 차원의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절차법을 흥정의 미끼로 삼는 것은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 정당간의 정책 분야에서 협상할 것은 마땅히 우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협조 사항은 조건없이 협력하는 게 큰 정치의 틀이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4천억원 대북지원, 공적자금 비리, 국정원 불법 도·감청 등 의혹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 구성도 안된 차기 정부측에 특검제와 국정조사를 연계 고리로 우기는 것은 참으로 졸렬하다. 국민은 권력의 오만에만 식상한 게 아니다.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기만 하는 야당의 횡포에도 역시 식상해 있다.
국민은 이제 새로운 큰 정치의 틀을 요구한다. 민주당의 살생부 유포 및 과잉대응, 한나라당의 인수위법안 발목잡기는 다 낡은 정치의 전형적 유산이다. 정당 개혁은 정치의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국민이 체감한다.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것을 보여 주어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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