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이탈리아 작가 보카초(1313~1375)의 소설 ‘데카메론’은 10일 이야기란 뜻이다. 남자 7명, 여자 3명이 무서운 흑사병을 피해 교외로 피신해 있으면서 심심한 나머지 하루에 한 사람씩 아야기하는 형식으로 작품화했다. 수녀원장이 정부의 팬티를 두건으로 잘못 알고 머리에 쓰는 등 갖가지 염소담(艶笑談)은 당시의 귀족들에 저항하는 인간해방으로 묘사돼 르네상스가 가져온 걸작으로 평가됐다.
로버트 벤톤이 감독한 영화 ‘노스바스의 추억’은 빈민층 인간 군상들 이야기다. 주인공 설리(폴뉴먼)역시 가난하고 무지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막노동으로 생활하면서 심심하면 포커와 술로 소일하는 홀아비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워싱턴서 대학 교수로 있으나 그 앞에 나서지 못한다. 아들이 태어난 지 6개월만에 아내와 갓난 아기를 두고 가출했기 때문이다.
요즘 러시아의 부자들 사회에서는 이색 체험이 성행하고 있다고 어느 신문에 났다. 남자는 거지노릇, 여자는 창녀노릇을 심심풀이 삼아 즐긴다는 것이다. 입성과 분장을 통해 거지로 만들고 창녀로 알선하는 업체까지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는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젊은 여성들이 돈을 벌겠다고 한국에까지 와 온갖 고생을 하는 판에 본국의 부자사회에서는 심심해서 거지며 창녀노릇까지 한다니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겠다.
소설 ‘데카메론’에는 그래도 풍자와 해학이 담겼다. 영화 ‘노스바스의 추억’은 외로운 사람들의 절제되지 않은 생활이지만 그래도 어둡지마는 않은 따뜻한 인정이 샘솟아 포근한 인간의 정이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러시아의 일부 부자들이 심심해서 즐긴다는 거지와 창녀의 이색체험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국의 부호들은 무슨 체험으로 심심풀이를 삼는지 또한 궁금하다. 인간은 잘 살든 못 살든 역시 인간이 아니겠는가.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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