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 ‘해방 광장’은 비특권층의 세상을 보여 준다. 벼룩시장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변호사·엔지니어·의사·교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몇푼의 돈이라도 건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좌판을 벌인다. 바그다드 인근 시아파 빈민 마을인 사담시에서 어린이들은 음식찌꺼기나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찿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뉴욕 타임스가 최근 보도한 이라크의 실상이다.

그러나 아라사트 , 카라다 등 번화가에는 아르마니 의상에서 로레일 향수와 소니 디지털 TV에 이르기까지 없는 물건이 없다. 부유층 남녀들은 밤이면 벤츠와 재규어 등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번화가에서 즐기다 무장 경비원들이 지키는 호화저택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10월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100% 찬성을 안겼던 선거 때 후세인의 장남인 우다이는 롤스로이스 최신 모델을 타고 투표장에 나타나 창밖으로 투표지를 내밀기도 했다.

후세인 특권층을 지켜주는 울타리는 공포정치와 지하경제다. 무모한 전쟁과 가혹한 경제 제재로 1980년만해도 아랍 제일의 부국 가운데 하나였던 이라크는 파산 지경이 됐다. 소수 특권층들은 이 틈새를 비집고 암시장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그러나 기아와 질병에 신음하는 국민들은 공포정치에서 숨을 죽여야 한다. 바그다드의 한 암병동에서 치료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11세 소년의 운명은 이라크의 현실이다. 이 소년을 살릴 치료약은 암시장에서 2천500달러를 호가한다. 그러나 이 소년의 아버지는 군인으로 한달 수입이 15달러에 불과하다.

한 외국 방문객이 자신이 암시장에서 약을 구입해 주겠다고 해도 담당의사는 자신의 목을 베는 시늉을 한다. 외국인의 이런 자선행위도 반국가적인 음모로 비쳐져 바그다드 해방 광장에서 처형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23년간 지배하는 이라크에는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후세인 체제의 버팀목인 이른바 후세인 특권층과 대다수 국민들처럼 빈곤과 절망 속에 연명하는 비특권층이다. 그러나 100% 찬성을 받는 후세인은 망명설이 분분하고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 준비를 마쳤다. 덩달아 한반도까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국가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한국의 현실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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