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 설립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약속했었다. 이회창 후보도 공약했다. 상당수의 국회의원도 소방청 설립방안을 시도했다. 그러나 소방청 설립 시도는 모두 중도에 좌절됐다. 정부조직을 책임진 행정자치부가 반대해서였다.
민방위·재난·재해 업무와 소방업무의 연계성이 저하돼 일사불란한 대응이 어렵다는 게 반대 이유다. 소방업무는 청소·상하수도 업무와 함께 전형적인 지방자치 업무이며 소방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므로 일선 소방관서를 보강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직관리라는 것이다. 재작년 일이지만 행자부 민방위재난관리국이 전시(戰時)는 물론 화재시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겸용방독면을 만들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발상은 방독면의 기본 구조도 모르는 ‘무지하고도 위험한’것이었다. 당시 소방국장을 비롯한 소방국은 화재시 방독면을 쓰면 질식사 우려가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소방총감인 소방국장도 민방위재난통제본부장과 같은 1급 상당이지만 직제상 본부장의 지휘를 받게 돼 있어 반대 주장에도 불구하고 겸용방독면 제작은 강행됐다.
방독면 사업은 여러 문제가 제기된 끝에 누더기로 변질됐고, 겨우 만들어진 겸용방독면은 활용되지 않고 있다. 결국 비전문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백억원의 예산만 낭비한 꼴이 됐지만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화재 전문가인 소방국이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소외됨으로써 나타나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53명에 불과한 소방국 인원으로는 소방정책을 입안하고 법제도를 검토하는 것 조차 힘겹다고 한다. 그래서 특수재해 연구 등 중앙차원에서 해야 할 중요한 기능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선거운동 기간중 한 소방서에 들러 소방관 복장을 하고 직원들과 사진을 찍으며 “소방청을 신설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당선자의 공약(公約)이 성사될지, 또 공약(空約)이 될지 소방인들과 함께 지켜 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