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고건 총리 후보자의 인준을 대북송금 특검법안과 연계하는 것은 당치않다. 국회 인사 청문회가 행한 고 후보의 국정능력, 자질검증에 대한 평가는 국회의 권한에 속하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인준 여부를 특검법안과 연계해 처리하고자 하는 것은 사리가 아니다. 인준 여부는 어디까지나 청문회 평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요량대로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청문회를 한 것인지 의아스럽다. 청문회 결과 인준이 타당한데도 민주당이 특검법안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부결시키겠다든지, 인준이 부당한데도 특검법안에 동의하면 통과시키겠다든지 하는 발상은 이제 청산돼야 할 개혁대상의 전근대적 술수다.
정치가 협상이긴 하나 술수가 협상일 수는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거의 민주당과 버금가는 표를 얻고도 패배한 연유에 대한 반성이 아직도 미흡한 것 같다. 한나라당이 새로운 개혁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걸핏하면 발목잡기 일쑤인 잔재주 정치부터 탈피해야 한다.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고건 총리후보 동의안과 특검법안을 처리하는 내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만약 총리 인준이 부결되면 새 정부 출범에 조각이 불가능해져 권력 구조의 공백이 불가피해진다. 이미 정권 교체기의 국정 누수가 심해 북 핵문제나 대미 대응에 새 정부의 강력한 지도력이 요구되는 터에 조각이 불가능해지는 건 심대한 국가적 타격이다.
이도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결과가 현저히 부적부당한 것으로 평가된 것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도 아니고 인사 의안을 먼저 처리해온 국회 관행을 저버리고 특검법안을 정략적으로 먼저 처리하는 의사결정 변경안을 힘으로 밀어붙여 그 결과에 따라 총리 임명 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다수의 횡포다. 국회는 국민의 국회이지 특정 정당의 국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략을 위해선 국가의 체모도 외면하는 술수는 이제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다.
특검법안 처리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자유다. 그러나 총리 임명 동의안과 연계하는 것은 정치적 자유일 수 없다. 어디까지나 별개로 분리 처리돼야할 의안이다.
한나라당이 대여 투쟁을 하는 것은 좋지만 무엇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를 좀 더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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