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30일 0시35분 다이애나빈이 파리에서 파파라치에 쫓기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숨졌을 때의 일이다. 미국의 모든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즉각 중지하고 사고중계에 나섰다. CNN, ABC, NBC 등에선 생생한 현장 화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유독 CBS만이 한가하게 프로 레슬링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지방 가맹사와 시청자들의 잇따른 항의로 다이애나빈 사고 방송에 나선 것은 한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CBS는 이를 ‘악몽의 한시간’으로 규정했다. 뉴스담당 책임자인 배나르도스 부사장을 좌천시키는 등 대대적인 문책 인사가 단행됐다.
지난 18일 오전 9시55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가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국내 TV 3사는 짤막한 자막 뉴스 등으로 내보냈을뿐 정규방송을 그대로 계속하면서 낮시간대에 MBC는 여자프로농구, SBS는 검도왕대회 등 스포츠 중계에 열올렸다. KBS-1TV는 오후 2시50분, MBC-TV는 오후 3시50분께 비로소 생방송에 들어갔다. SBS-TV는 낮시간대에 15분짜리 뉴스특보를 두차례 내보냈으나 만화 퀴즈 등 정규방송을 계속 방영하다가 역시 뒤늦게 생방송에 나섰다.
이미 며칠 지났다. 지난 일을 두고 새삼 말하는 것은 그러고도 문책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뉴스의 생명은 속보성과 현장성이다. 미국의 CBS가 다이애나빈 사고의 생방송을 놓친 한시간보다 몇배가 되도록 속보성과 현장성을 외면하고도 국내 방송은 태평인 것 같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는 것을 당초엔 미처 예측 못했다 할지라도 생방송 시작 시간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고 때문이다. 특히 MBC나 SBS의 경우 그렇다. 공영방송을 자칭하면서 광고 때문에 속보성과 현장성을 외면하는 것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일본의 NHK는 남의 나라 사고인데도 낮 12시 뉴스에서 7분간에 걸쳐 보도한 이후 오후 5시부터 50분간의 특집 뉴스를 통해 상세히 보도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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