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파란만장한 50여년 정치 역정을 마감하고 24일 오후 5시 청와대를 떠나 동교동 사저로 5년만에 ‘퇴근’하더니 바로 이튿날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이희호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만에 전직 대통령이 된 그의 얼굴은 한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1971년 평생의 정치적 경쟁자인 김영삼 의원을 물리치고 박정희 대통령을 상대로 대선전을 벌일 무렵이 그에게는 가장 전성기였다. 하지만 선거에서 분패한 그는 망명과 투옥, 가택연금, 그리고 4번에 걸친 죽음의 문턱을 넘겨야 했다.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내리 패배한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번복, 절치부심끝에 1997년 대선 4수에 성공,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그의 5년 대통령 재임은 그야말로 영(榮)과 욕(辱)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우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한국 경제를 기사 회생시킨 것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과를 평가하는데 있어 대전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일관된 햇볕 정책으로 인내심있게 밀어 붙여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데 이어 2000년 6월15일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금강산 육로관광의 길이 열리면서 남북분단 55년의 빙벽도 허물어졌다. 노벨평화상 수상과 한반도 긴장 완화는 월드컵대회와 부산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의 밑거름이 됐다.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 등으로 비판받은 면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동교동 사저로 귀가했다.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때 그를 위하여 ‘김사모(김대중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등장한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김사모’ 회원들은 지난 16일 모임 명칭을 ‘DJ Road (DJ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향한 끝없는 여정,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바꾸면서 ‘djroad.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했다. ‘김사모’ 회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앞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보다는 ‘김대중 선생님’으로 추앙받는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 ‘김대중 선생님’으로 불리던 시절에 그는 영웅이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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