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와DJ

김영삼(YS), 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은 팔십 고개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 분들도 젊음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다. ‘40대 기수론’이다.

야당시절이다. 1971년 대선 때 신민당의 두 40대 기수는 유진산 총재에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맞설 사람으로 젊은 후보를 강조하고 나섰다. 전당대회 경선 결과는 1·2차 투표에서 앞섰던 YS가 결선 투표에서 져 DJ가 후보가 되었다.

이에 앞서서도 두 사람은 민중당 대변인을 주고 받으며 지내는 등 항상 라이벌 관계였다. 나이는 DJ가 1925년생, YS는 1927년생으로 YS가 두살 아래지만 정계 입문은 5대 국회에 들어간 DJ에 비해 YS는 3대 때 25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입문해 선배가 된다. 두 사람은 제2공화국 장면 정권 시절의 민주당 안에서도 DJ는 신파, YS는 구파로 정파를 달리했다.

1984년 민추협 공동의장을 지내면서도 역시 라이벌 관계에 놓여 끝내 다 같이 대통령에 출마한 바람에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김대중 야당총재가 공격을 일삼았고, 김대중 대통령 땐 퇴임한 YS가 곧잘 DJ에게 독설로 시비를 걸기가 일쑤였다.

한국정치사에선 두 분을 민주화운동의 쌍벽이라고들 말한다. 돌이켜 보면 YS는 DJ, DJ는 YS가 있었으므로 서로가 존재할 수 있었다. 정적이면서 동지였던 두 분은 다 같이 대통령을 지내고 이제 평민이 됐다.

지난달 25일 가진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장엔 전직 대통령 다섯 분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 자리에서 유독 YS·DJ, DJ·YS만이 서로가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는 보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착잡하게 한다. 굳은 얼굴로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국가 원로로 더 이상 무슨 고움과 미움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다 걷어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술잔을 나누면서 회고의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40대 기수론’을 부르짖던 그들도 고령이다. 세월을 받아 들이는 넓은 우정을 기대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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