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속에 살고 있다. 기존의 가치관 타파가 얼마나 타당한가에 대한 확인의 틈도 없이 격동에 밀려가는 격변의 시대다. 신가치관이 얼마나 합당한가에 대한 돌아볼 틈도 없이 모든 것에 신가치관이 지배되고 있다. 뭔가 변화는 요구되는 흐름이어서 굳이 거역할 것도 없고 또 수긍할 필요는 있으므로 일단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역사의 새로운 좌표가 될 것으로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역사엔 연습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신가치관의 추구가 성공하길 바라는 것은 실패가 더 있어서는 안되는 데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신가치관의 주체부터 자만하여서는 안된다. 자만은 독선이고 독선은 그 자체가 반개혁이다. 그러므로 주체의 반성이 간단없이 반복돼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세상만 어지럽게 만든다. 신선한 것과 취중은 다르다. 충격을 성공시키는 책임이 따를 때 비로소 신선함이 인정된다. 반대로 실패의 책임을 면치 못할땐 권력의 취중으로 지탄된다.
개혁은 기득권의 포기에서 시작돼야 한다. 개혁엔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다. 주체 역시 객체와 마찬가지로 반개혁적 과거에서 오늘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하여 중요한 것은 주체부터 먼저 개혁해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상대에겐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의식은 고집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는 실로 위험한 아집이다. 아집과 소신은 구별된다. 아집은 감성적 주관이고 소신은 이성적 객관이다.
민중의 소리는 귀를 크게 열고 들어야 한다. 듣기싫은 소리에도 겸허해야 하는 것이 참다운 민중의 소리 청취다. 듣기좋은 패거리 소리만 듣는 것은 민중이 소리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용이 중요하다. 중용은 이도저도 아닌 중간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수용,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 중용이다. 우리의 갈길은 참으로 멀고 험난하다. 연습으로 제자리 걸음하거나 후퇴할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다. 오직 전진만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민중의 평가가 있게 된다. 그것은 내년 4월 총선이다. 개혁과 통합을 얼마나 알맹이 있게 추진하느냐, 아니면 구호뿐인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 개혁과 통합을 발목잡는가 아닌가에 따라 판가름 된다. 1년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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