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스포츠

이승만 초대 대통령(1948∼1960년 재임)은 스포츠에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전통무술 택견의 고수를 불러 경무대에서 시범을 보이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1963∼1979년 재임)은 1966년 프로복서 김기수가 당시 세계챔피언 벤베누티(이탈리아)와의 대전료 5만5천달러 때문에 애를 태우는 것을 알고 정부가 직접 대전료에 대한 지불보증을 서주도록 지시했다. 이때 김기수는 한국 최초로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WBA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1976년엔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자 엘리트 스포츠에 큰 관심을 갖고 곧 바로 한국체육대학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한국체대는 1977년 정식 개교했다.

전두환 대통령(1980∼1988년 재임)때는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 서울유치가 확정되면서 1982년 체육부를 신설했다. 1984년에는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창설됐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축구를 했던 전 대통령은 경기장에 갈 때면 해박한 축구지식을 자랑했다.

노태우 대통령(1988∼1993년 재임)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생활체육 활성화 쪽으로 정책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1991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창설됐다. 노 대통령 자신도 틈나는 대로 테니스를 즐겼다.

김영삼 대통령(1993∼1998년)때는 체육업무가 문화체육부 속에 흡수됐다. 김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등산과 조깅을 즐겼다. 외국에서 승리한 대표팀을 격려하다 코너킥을 페널티킥으로 잘못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1998∼2003년 재임) 시절에는 정부 내의 체육기구가 더 축소됐다. 체육업무는 문화관광부 속에 흡수됐고 부처 명칭에서도 아예 ‘체육’이라는 말이 빠졌다. 체육담당 부서는 1개국으로 줄었다. 다행히도 월드컵이 성공리에 치러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때 요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의 스포츠정책 공약은 스포츠산업 육성과 생활체육 확대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부조직이 미흡하다. 50대의 대통령이 스포츠 정책을 어떻게 펴나갈는지 궁금하다. 자고로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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