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月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1435~1493)은 조선시대 ‘신동(神童)’으로 전해진다. 과장된 표현같지만 김시습은 태어난 지 여덟달에 글을 알았으며 세 살에 시를 지었다고 한다.

“주관청침송엽로(珠貫靑針松葉露·구슬을 푸른 바늘로 꿰였으니 솔잎의 이슬이로다)”

“무우뇌성하처동(無雨雷聲何處動·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는 어디서 울리나) 황운편편사방분(黃雲片片四方分·누런 구름 점점이 사방으로 흩어지네)”

이 두 편의 시가 김시습이 세 살 때 지은 것인데 마지막 두 줄은 맷돌에 보리를 가는 광경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 착상과 비유가 실로 놀랍다.

다섯 살에 ‘대학’을 깨치고 글을 짓는데 막힘이 없다는 소문이 자자하자 세종조(世宗祖)의 명신 허조(許稠)가 몸소 김시습의 집을 찾아왔다.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老)자를 넣어 시를 지어 보아라.”

김시습이 “노목개화심불노(老木開花心不老·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라고 시를 지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세종대왕이 지신사(知申事·승지의 별칭) 박이창(朴以昌)으로 하여금 어린 김시습을 승정원으로 불렀다. 박이창이 김시습을 무릎에 앉히고 먼저 시 한 귀절을 읊으며 대구(對句)케 하였다.

“박이창 : 동자지학백학무청공지말(童子之學白鶴舞靑空之末·동자의 공부가 백학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추는 듯 하도다.” 김시습 : 성주지덕황용번벽해지중(聖主之德黃龍飜碧海之中·성군의 덕은 황룡이 푸른 바다 가운데서 뒤집으며 노는 듯 하도다)

놀란 박이창이 벽에 걸린 산수도를 가리키며 “저 그림을 두고도 시를 지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강가에 작은 정자가 있고 그 밑에 빈 배가 매어져 있는 그림이었다. 김시습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소리내어 읊었다. “소정주택하인재(小亭舟宅何人在·작은 정자와 배 안에는 누가 있는고)”

나뭇가지에 연두빛 물이 오른 지금은 봄이다. 김시습은 세 살때 “도홍류녹삼월모(桃紅柳綠三月慕)”라고 읊었다. “복사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니 삼월이 저무는구나”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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