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불순구고(不順舅姑·시부모와의 사이가 나쁘고), 무자(無子·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하고), 음행(淫行외간남자와 통정하고), 질투(嫉妬·투기가 심하고), 악질(惡疾·몹쓸 병이 있고), 구설(口舌·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도절(盜竊·도둑질)을 하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고 하였다.
이중에서 한 가지 사유에만 해당돼도 아내는 남편에게 버림 받았다. 그러나 ‘삼불거(三不去)’가 있어 칠거지악에 해당돼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
첫째, 혼인할 때는 가난했지만 그 뒤에 부귀하게 되었으면 내치지 못했다. 이는 여성의 노고와 재산권을 인정하는 항목이다. 결혼 후에 부귀를 얻었다면 아내의 노고와 내조가 그 원동력임을 명백히 하고 있음이다.
둘째, 부모의 삼년상(三年喪)을 함께 치른 아내는 내치지 못했다. 이 항목은 효행을 강조하고 있다. 예전엔 부모의 삼년상 치르는 것이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혼백이 모셔진 제청에 하루에 세번씩 상식을 올려야 하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삭망제를 지내야 한다. 또 소상과 대상도 장례식 못지 않게 번거로웠다. 그 고통을 견디어 내면서 이루어진 효행이 아내의 권리를 보장받게 하였다.
셋째, 쫓겨나도 갈 곳이 없는 여인은 내치지 못했다. 여기서는 휴머니즘의 경지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칠거지악’에 해당됐다고 하더라도 ‘삼불거’에 의해 대부분 구제가 됐을 법 하다. ‘칠거지악’은 경계의 의미에 중점을 두었을 뿐,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여성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의 여성들은 법도와 관행에 억눌려 대단히 조심스럽게 살았다.
오늘날 이혼이 늘어나는 것은 칠거지악에 없는 성격차이가 주종을 이룬다고 한다. 수십년을 살을 맞대고 살던 부부도 언젠가부터 느끼기 시작한 성격차이나 가치관 차이로 인해 갈라 서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나는 완벽한 부부생활을 한다’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현대판 칠거지악을 저질렀다면 현대판 삼불거도 적용돼야 할 것 같다. 무릇 용서하는 자, 용서를 받는 것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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