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현찰 1천만원쯤은 공무원이 아니고도 잠시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굳이 세무공무원 집에서 이런 돈이 발견됐다 하여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정황이다. 경찰청이 영장을 발부받아 가택수색에 나선 세무공무원은 얼마 전까지 모지방국세청에서 주류 유통을 담당했던 개인납세1과장이며 수색 장소는 그가 살고있는 서울 가락동 어느 아파트다.
정확히 1천100만원이 새돈 헌돈으로 각기 100만원씩 든 돈다발이 한 곳도 아닌 장롱 이곳 저곳에서 발견됐다. 화장대에서는 10만원짜리 수표 20장이 나왔고, 6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양복티켓 구두 등 상품권 50여장이 또 발견됐다. 룸 살롱을 방불케한 한 방에서는 로열샬루트 발렌타인 골드라벨 등 고급양주 200여병이 맥주상자와 함께 쌓여 있었다. 이런 양주를 월급으로 사두었을 것으로 믿을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다. 대수롭지 않게 놔둔듯 싶은 수표도 그렇고 돈 다발도 어디까지나 정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이 객관적 판단이다.
이 집주인은 세무서장을 지낸 국세청 중견 간부다. 세간의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촌지인지 선물인지 뇌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준 사람도 주어놓고 좋은 소린 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국세청 간부가 그에겐 잔돈푼이나 다름 없는 이런 다발 돈이나 수표로 구속된 것은 아니다. 일선 세무서장시절 호텔 법인세 2억4천만원을 부정환급해준 혐의로 구속됐다. 이엔 거액이 오갔을 것으로 보는 것이 경찰수사의 초점이다.
국세청 간부 집은 다 이렇게 호사롭게 사는 것으로 세인은 오해하기 쉽겠지만 다 그런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묵묵히 소임을 다 하며 청빈하게 사는 세무공무원도 많다. 그러나 뇌물을 주면 적용돼야 할 원칙에도 변칙이 생기고 뇌물을 안주면 배제돼야 할 변칙이 원칙으로 둔갑한다고 보는 항간의 개연적 인식이 이런 잘못된 국세청 간부로 인한 것은 유감스런 현상이다. 공직사회의 부패 추방은 각 분야에 다 같이 요구되는 것이나 세무공무원은 특히 업무의 이해관계가 예민하여 더 한다. 국세행정의 신뢰회복·조세정의 다짐이 구호뿐인지 아닌지를 국세청 스스로가 판단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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