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전은 저주(詛呪)를 ‘남이 못되게 되기를 빌고 바람’이라고 풀이 하였다. 그러므로 그냥 못되길 바라는 것을 고전적 저주라고 까진 할 수 없다. 어떤 주술, 즉 기원하는 행위 등 목적 의식(儀式)이 수반돼야 저주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주술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대체로 유감법칙(類感法則)이 많이 쓰인다. 저주하는 대상의 인물을 이를테면 그림으로 그린 화상이나 인형으로 만들어 바늘로 찌르고 칼침을 되풀이해 놓는 것 등이 유감법칙이다. 비록 모형물이지만 저주의 대상이 그렇게하여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만족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될 것으로 아는 의제화(疑制化) 심리를 갖는 것이다.
저주의 주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많이 쓰였다. 그 어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초인적 힘을 개인적 보복 심리로 원용하였다. 고대사회에선 국가적인 주술행사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달하면서 저주는 한낱 관념적 개념으로 치부하게 됐다. 이런 21세기에서 이라크 전쟁을 통해 기막힌 주술이 발견된 것은 비극 중의 희극이다. 바그다드시내 라시드 호텔 현관 바닥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타일로 만들어져 투숙객들의 구둣발에 밟혀온 것이다. 후세인은 1991년 걸프전 당시의 아버지 부시를 그렇게 만들어 저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는 고통으로 이를 드러내며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에다가 ‘부시는 범죄자’라고 써놨다. 이에 발끈한 현 미국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아버지 초상화를 뜯어낸 자리에 후세인 초상화를 만들어 넣기로 했다고 전한다.
저주는 일종의 비합리적인 복수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다. 현대사회에서 고전적 초상화 주술이 교차되는 것을 보면서 증오에 찬 인간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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