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화력전만이 있는 건 아니다. 국제적으로 금지된 대량살상의 생화학전도 있고 이밖에 심리전도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 자신은 막상 땅 속에 숨어 있으면서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이른바 성전 독려를 외쳤던 것은 심리전이다. 후세인의 두더지 심리작전 주연에, 주연급 조연을 한 사람이 모하메드 사이드 알 사하프 공보장관이다. 그는 국내 TV 시청자들에게도 낯이 익었을만큼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후세인의 연설을 대독하기도 했다.
사하프는 후세인 못지않은 허황한 말을 많이 했다. ‘승리’를 자신한다면서 연합군을 ‘격퇴’하고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지난 9일 바그다드 함락 직전의 TV화면이 세계에 방영되는 시간에도 “바그다드가 연합군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이라크의 승리를 호언했다.
그러고 보니 6·25 한국전쟁 때가 생각 난다. 국군은 단 한 대도 갖지 않은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온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개성이 빼앗기고 장단을 거쳐 의정부가 뚫리고 있는 순간에도 중앙방송국(KBS전신) 라디오는 국민들에게 ‘안심하라’고 했다.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은 ‘용맹무쌍한 국군이 적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허위보고해 이승만 대통령은 그 말을 곧이 듣고 대국민 방송을 했다. 당시 서울 시민의 희생이 컸던 것은 이런 엉터리 심리전 때문이었다.
다시 이라크 얘기로 돌아가 바그다드 함락 이후 허풍쟁이 사하프의 종적이 묘연한 가운데 이란 신문에 자살설이 보도됐다. 목을 매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측일뿐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라크 지도부의 행방중 가장 관심이 큰 후세인 다음으로 사하프가 인기랄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우스꽝스런 심리전의 배우 노릇을 한 탓인 것 같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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