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사람인 안필승(안막)이 서울 출신의 최승희와 결혼한 것은 1931년 일본에서다. 안막은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스물한살의 와세다 (早稻田) 대학생이었고 최승희는 서울 숙명학교를 나와 무용 유학중 벌써 두각을 드러낸 스무살의 촉망받는 신인이었다.
안막은 문학평론가로 날렸고 최승희는 세계적인 무용가가 됐다. 1945년 유럽 등지를 절찬리에 순회 공연한 게 계기가 되어 화가 피카소는 파리 상젤리제 극장에서 공연하는 최승희의 얼굴을 그린 소묘(素描) 그림을 선물하기도 하고, 영화배우 로버트 테일러는 연서를 보내기도 했다.
또 숱한 제자를 배출했다. 지난해 9월30일 최승희 탄신 90주년 땐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몽골 등지서 지금은 각기 원로급 지도자인 10여명의 제자들이 한국 프레스센터에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안막, 최승희 부부는 특히 금실이 좋았다. 1946년 그녀가 남편 따라 월북한 것은 사상보다는 남편과 함께 하고자하는 사랑이었다.
안막(안필승) 형제는 모두 예술가다. 형 안보승은 성악가였고 동생 안재승은 무용평론가다. 현재 무용계의 거목이며 경희대 명예교수인 김백봉은 안막의 친동생 안재승의 부인이다. 그러니까 최승희의 아래동서이며 또한 제자다. 안막은 1958년, 최승희는 1969년 평양에서 병으로 타계했다. 그녀의 비문엔 ‘인민배우’와 ‘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위원장’이라고 새겨있다. 숙청의 비운을 맞은 뒤에 복권됐다.
이들 부부의 초혼제가 오는 26~27일 안막의 고향이며 최승희의 시댁인 안성시 고삼면 봉산리 꽃뫼마을에서 ‘꽃뫼예술제’ 행사로 펼쳐진다. 남한에서는 월북했다고, 북한에서는 숙청 당했다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천재적 문학가며 천부적 무용가다. 천리 타향에서 숨져간 두 부부의 혼백이나마 그 옛날 새 색시시절 시댁을 찾던 신랑신부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찾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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