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훈령으로 제정한 불복종권 등 ‘경찰공무원의 청렴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 규칙’은 그 취지는 좋으나 실용화보다는 선언적 의미에 더 무게가 있어 보인다. 상급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에 반하는 명령에 대한 하급자의 불복종권 규정은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이 내부개혁으로 꼽는 항변권이 한동안 논의 되다만 터에 경찰이 불복종권을 훈령으로 인정한 의욕은 사뭇 개혁적이다.
그러나 상급자의 명령을 하급자가 따르지 않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경찰같은 권력형 공조직의 특성이다. 그것도 법규에 현저히 위반하는 명령 같으면 또 모르지만 그도 아닌 직무 관련의 명령에 부당성을 소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공정한 직무수행에 반하는 지시’의 판별이 객관화되지 못해 구분이 모호하다. ‘부당한 명령’이란 개념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 훈령은 이에 방법상 청문감사관과 소속 장에게 취할 수 있는 몇가지 장치를 강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난점이 없지않다. 경찰 체질상 불복종엔 아직까지 익숙하지 못한 하급자가 과연 그같은 어려운 절차를 밟아가면서 얼마나 거부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어떻든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불이익을 예상하는 게 상식화되어 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훈령이 잘못 운용되면은 경찰조직 특유의 응집력에 흠이 갈 우려가 없지 않다. 경찰권의 한계엔 몇가지 법칙이 있지만 실제로는 시비에 휩싸일 때가 많다. 예컨대 어떤 중대 범인을 무장 경찰관이 놓치면 총을 들고도 눈 앞에서 잡지 못했다고 나무래고, 범인을 쏘아 잡긴했으나 죽거나 크게 다치면 함부로 쏘았다는 힐난을 듣기가 일쑤다. 경찰 직무의 이런 양면성을 긍정적으로 융합하는 조직의 응집력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 직무는 방대하여 그 소임이 인권과 밀접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 그래서 과거 이같은 직무집행의 과정에 없지 않았던 부당한 명령의 폐습을 시정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훈령제정의 의지로 보아져 그 점에서 평가하고자 한다. 하급자가 부당한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든 않든 이에 앞서, 상급자가 먼저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기를 다짐하는 선언적 의미가 조직에 깊이 파급돼 새로운 경찰 기풍이 조성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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