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詩

“멧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손데./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조선 선조 때 명기 홍랑이 지은 시조다. 1573년(선조6) 최경창이 북평사로 함경도 경성에 가 있을 때 친해진 홍랑이 이듬해 최경창이 귀경하게 되자 영흥까지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에 함관령에 이르러 저문 날 비 내리는 속에서 이 시조와 함께 버들가지를 함께 주었다고 한다.

“이화우 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 낙엽에 져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매.” 조선시대 부안의 명기 계랑(桂娘)의 작품이다. 계랑의 성은 이(李),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梅窓)·계랑·계생(桂生)으로 가사·한시를 비롯하여 가무·현금(玄琴)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예인이다. 학자인 유희경(劉希慶)과 사귀어 정이 깊었으나 그가 상경한 후 소식이 없으므로 이 노래를 짓고 수절했다고 전해진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일지 춘심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신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시조다.

“도화는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 온다./꾀꼬리 새 노래는 연우(烟雨)에 구을거다/맞추어 잔 들어 권하랼 제 담장 가인(淡粧佳人) 오도다” 조선 고종 때의 가인(歌人) 안민영(安玟英)의 작품이다. 1876년(고종13) 스승 박효관과 함께 조선 역대 시가집 ‘가곡 원류’를 편찬 간행, 근세 시조문학을 총결산 하는 데 공헌했다.

“꽃이 진다 하고 새들아 슬워마라./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워 무삼 하리오.” 조선시대 우참찬을 지낸 송순(宋純·1493 ~ 1583)의 시조다. 1545년(인종1) 을사사화 때 희생된 인재들(윤임 일파)을 꽃, 새는 세상 사람들, 바람은 가해자인 윤원형 일파, 봄은 민족의 운명으로 비유했다. 홍랑·계랑·이조년·안민영의 시조와는 달리 현실을 비판했다. 봄날의 시심은 각별히 유정하다. 세상사 시름일랑 잠시 잊고 꽃그늘에 앉아 마시는 ‘낙화주(落花酒)’가 생각나는 시절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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