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욕심과 미움, 절망과 번민을 떨치고 아기 예수와 함께 평화와 사랑의 생명잔치에 참여하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백도웅 총무) 이는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 내용이다. 불교측의 덕담도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다” (불교 조계종 정대 전 총무원장)
이에 이어 올 석탄일엔 천주교측의 덕담이 있었다. 종교는 이처럼 권력과 금력 앞에 초월할 때 비로소 빛을 뿜는다. 종교의 진정한 관심은 오로지 어린 양들인 중생들만이 대상이다.
담임 목사의 연봉이 1억2천300여만원에 달해 ‘너무 많다’는 신도들의 이의가 제기됐던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연봉은 7천300여만원이었지만, 이 역시 많은 것으로 인정돼 신도들로 구성된 ‘목회자사례연구회’에서 5천700만원으로 조정했다.
또 어느 교회에선 장로를 시켜준 목회자에게 새로된 장로들 수명이 돈을 모아 외제 수입 승용차를 선물로 주었다. 지난 석탄절 어느 사찰의 연등은 권력자 순으로 대웅전 앞 VIP라인에 걸려 신도들의 시선을 끌었다. 아기 예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고,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났으면서 영화를 버리고 고행을 택하셨다. 이 분들에게 권력과 금력은 아무 의미없는 초개같은 것이었다.
어지러운 이 세태에 종교마다 교세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 하다. 종교활동 역시 소비가 따르므로 돈이 필요한 것 또한 마땅히 인정된다. 다만 일부 종교인들이 권력과 금력앞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궁금해하는 많은 신도들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 궁금하다. 권세와 영합하여 권력화하거나 금전과 영합하여 기업화하는 종교인은 없을 줄로 믿고싶다. 종교지도자들의 메시지는 종교인의 준칙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과 같은 진솔한 등불을 켜야 한다”는 것은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의 이번 석탄일 봉축 법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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