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변(辯)

선친이 작고하여 호주 상속을 받은 지가 20여년 된다. 적잖은 세월이다. 하지만 호주란 것을 의식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호주 권한을 행사한 일이라고는 더욱 없다. 호주제가 무슨 천하의 악법인 것처럼 야단 법석이다. 어머니 할머니되는 집안의 어른 여성을 놔두고 어린 아들이나 손자 등 남성이 호주가 되는 것을 성차별의 큰 폐악처럼 떠든다. 심지어 남편이 죽거나 이혼한 뒤에 재혼하면 데리고 간 전 남편의 자녀 성씨마저 재혼남편 성씨 따라 고쳐야 한다고 우긴다. 말이야 아이를 위한다지만 재혼녀 여성을 위하는 소리다. 생모가 시집갈 때마다 성씨를 몇번씩 바꾸는 아이들이 안나온다 할 수 없다.

호주제 대신 일본처럼 가족부를 만들거나 미국처럼 1인1호적제를 만들자고 한다. 그래야 선진국형 가족제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호주를 반납한다 해서 유감스런 건 조금도 없다. 나이가 많으므로 생각이 고리타분한 것인지 스스로 성찰도 수없이 해보지만 아무래도 한다는 소리들이 이상하다. 만약 아버지 성씨 승계의 민법 강제조항을 폐지하면 제멋대로 성을 만들어 족보도 못만들 지경의 난장판이 되어 성씨의 의미가 없게 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전통적 가족제도가 붕괴될 것이 심히 두렵다.

여성이 결혼을 해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본연의 성을 그대로 갖는 여권 존중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밖에 없다. 일본의 가족부나 미국의 1인1호적이 최상의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일본이나 미국처럼 우리의 여성도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제도에 찬동할 것인지 묻고 싶다.

성차별은 당연히 없애야 하지만 호주제가 과연 성차별인가엔 깊은 생각이 요구된다. 유행병적 개혁은 개악일 뿐 개혁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관념이 왜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들도 자식이고 딸도 자식이다. 인간다움에 성별을 가릴 이유는 없다. 남성이나 여성이란 입장보단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추는 생각이 요구된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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