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정권은 가만 놔두면 붕괴될 것인데도 남쪽에서 도와 정권을 연장케한다”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충고를 우리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래도 동포애로 인도적 지원을 비롯하여 경협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관점을 재고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수한 인민들이 굶어죽고 수많은 인민들이 탈북하는 가운데 요인들 망명까지 잇따르고 있다. 이러다가 사선의 장벽을 무너뜨린 흡사 동독 붕괴 직전의 피난민 대열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된다. 물론 한반도 분단과 독일 분단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그런 게 연상될 정도다.
하지만 작금의 일이 아닌 탈북 사태를 두고 새삼 북측 정권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수 많은 정치범 집단수용소 등으로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는 인권탄압 때문도 아니다. 자기네 인민들을 제대로 못먹여 살리는 것에 조금도 수치심을 느낄 줄 모르는 부도덕성 때문만도 아니다. 국제 마약상으로까지 전락한 정권의 범죄조직성만도 역시 아니다. 보다 절실한 것은 북측 정권에 더이상 신뢰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에도 그같은 북측 정권이지만 달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당장은 믿을 수 없어도 장차 언젠가는 믿을 수 있게 된다고 보아 기대해 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면 지금이 그 고비다.
북측이 진정 평화와 번영을 위한다면 핵 카드를 더 고집하지 말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만이 우리의 신뢰를 충족할 수 있다. 미국을 압박하고 남쪽을 불안하게 하면서 무한한 흥정거리로 일삼는 핵 카드는 남북 공존의 번영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 북측의 그간 온갖 위협적 요구에 많은 것을 수용하였지만 핵 문제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은 일찍이 약속한 비핵화 선언에 위배되는 신뢰의 본질적 상실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핵)협상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 갈 수는 없다”고 밝힌 노무현 대통령의 귀국길 기내 기자간담회 발언은 북측을 더 신뢰할 수 없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 역시 동의하는 것이다.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만 그 방법이 이젠 달라져야 한다. 무작정 끌려만 가는 것이 해결책이기 보다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게 그간 북측을 상대하면서 터득한 경험법칙이기 때문이다.
북측 정권은 이제 생존 수단을 바꾸어야 한다. 국제사회의 트러블 메이커로써는 갈수록 인식만 나빠져 힘겨울 뿐 실익이 없다. 그보다는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신뢰를 쌓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우리들은 북측과 계속 교류하면서 협력관계를 갖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신뢰성을 담보해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의 이같은 요구는 전적으로 북측의 책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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