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가정 도우미, 가슴으로 일한다

경기 가정도우미 일에 3년이 다 되어간다. 우연히 어느 아주머니의 소개로 이 일을 처음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일이 낯설어 잘 해낼 수 있을지, 괜히 다른 사람에게 폐나 끼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시작했다. 다행히도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정도 많이 쌓여 갔고, 이웃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지천명(知天命)을 넘은 나에게 따뜻함과 감사함을 가슴 깊이 새겨 주었다.

방문 가정에 앞을 보지 못하는 언니뻘의 시각 장애인이 있었다. 집안이 얼마나 깔끔한 지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였다. 앞을 볼 수 없지만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아오며 갖은 풍파를 다 겪었고 그때마다 너무 힘들었는데 이 언니를 진작에 봤으면 어려울때 좀 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시청에서 장애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지체 장애인처럼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생각같아선 앉아서 가니까 편할 거 같았는데 내 다리로 걷는 것 같지 않아 너무 힘이 들었다. 시각 장애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안대를 했는데 휠체어보다 더 불편하다고들 했다.

서비스를 받는 할머니들은 많으신데 모두 내 어머니 같다. 할머니들은 정을 그리워 하시는 분들이라 얼굴만 보아도 좋아하신다. 뼈가 앙상한 할머니를 목욕시킬 때면 3년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짓기도 했다. 살아생전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워 할머니들을 어머니처럼 생각하면서 어머니께 못다한 효도까지 다 해드리려고 한다.

가정도우미로 활동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외롭고 어렵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마냥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바라볼 때 모든 괴로움은 봄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인생의 황혼기가 아니라 정오쯤에서 이러한 삶의 깊이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오늘도 미소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르신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오정임·부천시 경기 가정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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