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국보 '三國遺事'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전적(典籍) 문화재인 ‘삼국유사 ’가 지난 4월 10일 국보로 승격, 지정됐을 때 문화재청이 고맙기까지 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쌍벽을 이루는 역사서다. ‘삼국사기’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를 다룬 정사(正史)라면 고승 일연(一然)이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 분류하여 1281년(충렬왕)경에 편찬한 ‘삼국유사’ 는 자유로운 형식의 역사서 또는 야사(野史)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寶庫)다. 특히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됐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화와 설화가 모두 결집돼 있는 ‘삼국유사’는 또한 차자표기(借字表記)로 된 향가, 서기체(誓記體)의 기록, 이두(吏讀)로 된 비문류, 전적에 전하는 지명 및 인명의 표기 등 한국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이 전해준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 중 최대로 꼽히는 것의 하나는 향가(鄕歌)다. 14수의 향가는 우리나라 고대문학연구의 값진 자료다.

한국 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탑상편의 기사는 탑·불상·사원건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다. 고로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유적을 조사·연구하는 데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삼국유사’의 가치에 대하여 “조선의 고대에 관하여 신전(神典)될 것, 예기(禮記)될 것, 신통지(神統志)내지 신화 및 전설집(神話及傳說集)될 것, 민속지(民俗志)될 것, 사회지(社會志)될 것, 고어휘(古語彙)될 것, 성씨록(姓氏錄)될 것, 신앙 특히 불교사 재료일 것, 일사집(逸史集)일 것”으로 규정했다. 한국 고대사의 최고 원천이며, 일대 백과전림(百科典林)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사실 고대사 연구상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가장 귀중한 자료다. 대부분이 옛글(金石文 및 載籍)을 인용한 것이지만, 자신이 답험(踏驗)한 것도 상당수 기록해 놓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설화인 단군신화를 처음으로 기록, 후세에 남김으로써 우리 역사를 중국과 대등한 위치로 끌어 올린 것은 획기적인 공이었다. 또 삼국 등의 개국 설화를 실어 놓아 신화학이나 설화문학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우리 고대사를 자주적인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국어국문학 특히 시가(詩歌) 연구에도 ‘균여전’ 과 더불어 유일하게 향가를 전해주고 있으며 당시에 쓰이던 언어를 한문으로 표기해 놓은 것이 많아 우리의 고대어 연구에도 더 없이 귀중하다.

우리 문학·사학·철학에 뜻을 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삼국유사’를 읽고 옛것을 상고하여 오늘에 재생산할 거리로 삼아야 마땅하다.

‘삼국유사’는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데 국보 제306 - (2)호로 등록됐다. ‘삼국유사 ’(5권 2책, 34.2 x 220 cm)는 현재 학계에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조선 중종 7년(1512) 경주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중종 임신본(中宗 壬信本)’의 하나다. 낙장이 없는 유일한 책이다. 글자 탈락이나 마멸이 적고 인쇄도 선명해 같은 판본 중에서도 인출 시기가 가장 빠른 16세기 전반 전기 인출본으로 판단된다.

일연 선사가 오늘날 살아 계시다면 8·15 이후의 한국 역사를 어떻게 썼을까. ‘삼국유사’를 다시 읽으면서 일연 선사의 생애가 재삼 위대함을 느낀다. 만일 아직 읽지 않았다면 청소년들이 ‘삼국유사’를 꼭 정독했으면 좋겠다.

/임병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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