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불효(孝不孝)

홀어머니가 밤 중이면 나가곤 하여 한번은 아들이 뒤를 밟았다가 자신이 다니는 서당 훈장과 남의 눈을 피해 만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 아들은 마을 앞 개울 물속을 어머니가 추운 겨울에 건너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어머니 모르게 돌다리를 놓아 편히 건널 수 있게 해 주었다.

서울에서 ‘카사노바 아버지’를 아들이 폭로해 구속되게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어머니에게는 효가 되지만 죽은 아버지에게는 불효라 해서 ‘효불효교’라고 했다는 경북 경주에 전하는 ‘효불효교’의 설화가 생각난다.

마흔다섯살의 이혼남이 인터넷 재혼 사이트를 통해 여교사, 간호사 등을 꾀어 사업자금이란 것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수 많은 여성을 번갈아 집으로 데려가 아들 딸에게 ‘새엄마 될 사람’이라고 소개한 건 피해자에게 신뢰를 얻기위한 사기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아버지를 보다못한 열아홉살난 아들은 이메일로 폭로했고, 한 피해여성의 고발로 그 아버지는 경찰에 덜미를 붙잡히게 됐다.

비극이다. 아버지도 괴롭고 아들도 괴로운 일이다. 아버지의 외도를 아들이 아는 체 하는 것은 불효 중에도 큰 불효라지만 외도도 아닌 상습사기 수단으로 아들은 인격권을 침해 당했다. 열아홉살된 아들이면 그에게도 마땅히 인격권이 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탓하기 전에 자녀에게 상습적으로 안겨준 잔인한 고통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카사노바는 18세기 이탈리아 사람으로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성 편력을 일 삼았던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외국어에 능통하고 문학·음악 등 예술에 조예깊은 지식과 화술로 사교계 여성들을 유혹했을 뿐 여성들에게 돈을 뜯어내진 않았다.

딱 맞은 비유는 아니지만 그 아들 또한 비록 당장은 아버지에겐 불효했을지라도 효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경주 설화엔 그래도 낭만의 일면이 있는데 비해 현대판 ‘효불효’는 그렇지 못해 듣기에 씁쓸하다.

치사한 범죄의 사기 행각에 자녀까지 볼모로 삼은 그 아버지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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