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지금부터

한(漢)나라 때 산둥 지방에 살던 공손홍(公孫弘)은 젊은 시절 그 지역의 옥리(獄吏)였으나 죄를 짓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돼지를 기르면서 생계를 유지하다 마흔이 넘어서부터 ‘비로소’학문에 뜻을 두고 춘추잡설(春秋雜說)을 독학했다. 다시 20년이 흘러, 공손홍은 예순의 나이로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벼슬길에 올랐다. 넓고 깊은 학문과 사무능력, 처세술 등을 고루 갖춘 그는 10년 후엔 최고위직인 승상의 자리에 이르렀다.

공자(孔子)는 학문을 닦으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51세에 비로소 벼슬길에 올라 4년 후 실각당한 뒤 천하를 주유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평생을 현역으로 활동했다.

사마천(司馬遷)은 38세에 궁형(宮刑)의 좌절을 겪은 뒤 이를 극복하고 불후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저술했다. 38세 때까지 시골의 유협에 불과했던 유방(劉邦)은 진(秦)제국의 붕괴라는 역사의 흐름을 읽고 반란군의 지도자가 돼 훗날 황제에 올랐다.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조조(曹操)는 늘 도전하며 살아간 인물이다. 빈손으로 출발해 큰 안목과 쉬지 않는 독서로 인생의 후반에 큰 꽃을 피웠다.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후반기에 오히려 지략을 감춤으로써 성공했다.

39세의 무능한 지도자를 가차없이 바꾸는 승부수를 던진 촉한의 법정(法正), 동진(東晋)의 명장 도간(陶侃)은 57세에 좌천됐으나 매일 100장의 기와를 지붕에 올려 체력을 쌓고 재기에 성공했다.

이들 중국인의 공통점은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이젠 늦었다’고 풀 죽은 게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나 삶을 끝까지 밀어 붙인 점이다. 실직과 명퇴, 창업과 재취업으로 제2의 인생 설계를 도모하는 일이 흔해진 요즘, 인생 후반부에 꽃을 피운 영웅들의 인생은 새겨볼만 하다.

인생의 열쇠는 후반부에 있고 후반부의 시작은 40세, 50세, 60세일 수도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삶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50, 60, 70세를 넘긴 사람들도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하면 늙은 게 쓸쓸하지는 않을 것 같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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