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의 ‘외화내빈’

정상회담에 실패는 없다. 이번 한·일정상회담 역시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화내빈을 부인하긴 어렵다. 과거의 대통령들이 방일할 때도 새로운 파트너십이 늘 강조되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서 가진 두 나라 정상회담 역시 그랬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또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다짐은 지극히 원론적 수준이다. 새로운 말이 아니다. 오히려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시각에 온도차를 발견케 한다. 평화적 해결을 유도하기 위한 추가 조치로 해안봉쇄나 경제제재에 비중을 두는 것은 대화쪽에 무게를 두는 우리 정부 입장과 상치돼 오히려 입지를 좁힌 감마저 없지 않다.

두 나라 정상의 합의도 그 간 피차 입장을 확인하는 원칙론에 불과하다. 예컨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그 시점을 담보잡지 못하고 막연히 ‘체결교섭의 조기개시’라고만 합의했다. 한국인에 대한 입국비자 면제도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 코리아-저팬 축제가 열리는 2005년으로 하자는 우리측 명시요구를 일본 법무성이 반대하여 ‘조기실현 노력’이라는 막연한 문틀이 되고 말았다. 이나마 거론된 것은 저들이 요구한 일본 대중문화의 확대를 우리측이 수용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언제나 합의에 비해 실천이 빈곤했던 한·일 두 나라 정상회담의 결과가 이번이라고 뚜렷이 전전될 것으로 볼만한 근거는 희박하다. 특히 참여정부 외교팀의 취약성은 더욱 불안하다. 두 나라 정상이 회담을 갖는 날이 하필이면 국가의 기일이 되는 현충일이었던 건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일정상 불가피했다는 설이 있다. 또 일본의 재무장을 공식으로 선언하는 ‘유사법’ 통과가 있었다.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이런저런 사정을 일본측에 미리 조정하도록 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외교팀의 막중한 책무다. 설사 이런 외교 관례의 격식을 깨고 회담을 강행했다면 그에 상응한 내실이라도 이끌어 냈어야 한다. 과연 그만한 수확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토록 무력한 외교팀이 그나마 합의된 구체성 없는 구호성 합의사항의 난관을 얼마나 극복하여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인지 걱정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로 일본 기업인들의 한국 투자에 위축이 없기를 한가닥 기대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상견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국민의 일반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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