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정신

지난 일요일의 두 스포츠 소식 중 하나는 감동적이었고 하나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미국 전역의 메이저리그 팬들 가슴을 뜨겁게 달군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 감동투혼, 타자의 뜬 볼을 잡은 공은 의식을 잃고도 글러브에 꼭 쥐어 있었고 의식을 잃기 직전엔 맞부딪힌 동료는 괜찮은지 물었다는 그의 투혼은 진주빛보다 영롱한 감격 스토리다. 이런 인간승리의 감투정신에 힘입어 짜릿한 역전의 승전보를 최희섭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 전했다는 팀 선수들 얘기 역시 드라마틱하다.

이에 비해 서울월드컵구장서 우루과이와 가진 한국 대표팀의 축구 친선경기는 정말 졸전이었다. 마치 미련스럽도록 씩씩거리기만 하는 멧돼지가 약삭 빠른 여우에게 이리저리 당한 형상을 방불케한 것이 0-2 완패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공격력이 우세하고 슈팅 수만 압도적으로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찬스 뒤엔 위기가 따르는 것이 구기종목의 게임 이치다. 득점을 해야할 기회에 골문도 아닌 엉뚱한데 차곤 한 것은 골 결정력 미숙의 고질병이 도졌다기 보다는 정신상태의 이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게임도 경제적으로 해야한다. 내력없이 체력만 소모시키는 비경제적 게임은 조직력이 없는데 기인한다. 또 대표팀엔 게임 리더가 없어 보인다. 뛰는 게 모두가 제멋대로다.

축구 대표팀의 이런 위기는 불화에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이번만이 아니다. 안정환의 결승골로 간신히 이긴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저마다 스타플레이어 의식에만 젖어 대표팀 특유의 세트 플레이가 연출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직업정신이 해이해진 탓이다. 축구 대표팀의 당면 과제는 무엇보다 인화가 시급하다. 프로의식을 구심점 삼아 마음을 모아야 한다.

최희섭이 그랬다. 땅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그가 들 것에 실려 앰뷸런스로 옮겨질 때 시카코 컵스 홈 구장의 3만9천여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고, 그 중엔 눈물을 글썽이는 관중도 TV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최희섭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그들을 그토록 뜨겁게 감동시킨 것이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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