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황순원(黃順元)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이성에 눈 떠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소년은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은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토요일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소년과 소녀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칡꽃을 따기도 한다. 소년은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 주었다. 그뒤 며칠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분홍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은 전답을 다 팔아 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잖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소나기’는 유년에서 성적 성숙의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서적 경험이 서정시적인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이 양평이고 개울은 ‘원덕리’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양평에 ‘소나기 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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