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 저격사건은 대통령 일정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발단이었다. 저격범 힝글리 호주머니에서 대통령 일정이 보도된 신문기사 스크랩이 발견됐고 이 보도를 토대로 암살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미 언론은 대통령 일정을 사전에 보도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있다. 그만큼 대통령 일정은 각별한 보안의식이 필요하다.
대통령 일정은 일반적으로 2급 비밀로 분류된다. 대통령 행사 자체가 갖는 경호비중이 큰 데다 자칫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행사장을 무력으로 점거하거나 민원해결을 위한 고강도 시위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익집단의 실력행사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행정기관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우리의 경우 더욱 일정 공개가 부담스럽다.
지난 6월2일 한 대중음식점에서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과의 오찬회동은 사전에 음식점 상호와 장소 등이 보도됨에 따라 일부 시위대가 음식점 앞을 점유하고 구호를 외쳤다. 이에 앞서 5·18 광주 방문은 한총련 학생들이 대통령의 입장을 저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방미 귀국 행사시에도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로 차량 이동을 포기했었다.
민주화된 사회일수록 국가원수 경호는 개방적이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사건 이전 1865년 링컨, 1901년 매킨리, 1921년 루스벨트, 1950년 트루먼, 1963년 케네디 피격 등 대통령 암살과 암살 미수사건이 잇따랐다.
우리나라에서도 1895년 명성황후 시해, 1949년 백범 김구 암살,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지에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겨냥했던 북한 공작원들의 폭탄 테러,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가 있었다.
얼마 전 노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자동차로 이동하다 할머니 관람객으로부터 편지가 든 비닐 봉투를 건네 받았다. 애국가 가사 시작 부분을 바꿔달라는 주문이어서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만일 노파를 가장한 테러범이었다면 큰일 날뻔 한 사건이었다. 청와대는 ‘청와대 브리핑’ 제72호를 통해 “탈(脫)권위를 이해해야 ‘열린 경호’가 보인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경호차원에서 대통령 일정은 신중히 공개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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