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당번 약국제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약국의 문이 굳게 닫혀 있을 때 갑자기 병이 나거나 다치면 큰 낭패를 당한다. 동네 의원도 일요일에는 거의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연고 한두번 바르면 나을 수 있는 크지 않은 상처도 종합병원 응급실로 찾아가야 한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4개 약국 중 한 곳을 당번으로 정해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에도 문을 열도록 한 ‘휴일 당번약국제’가 있다고 하지만 유명무실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유로 대한약사회가 시행해 온 휴일 당번약국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의약분업 실시와 주5일 근무제 탓이다. 의약분업 실시 후 약국에서 단독으로 판매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의 비율이 30%이하로 낮아지면서 병·의원이 쉬는 휴일에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약사들이 문을 열 의욕을 못느낀다.

주5일 근무제 확산은 더욱 휴일 당번약국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5일 근무제 세상에 살려면 각 가정이 응급처치할 수 있는 상비약을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젊은 약사들의 경우 주말에는 무조건 문을 닫겠다는 생각이다. 몇푼 안되는 수입을 보고 주말을 허비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약사들이 당번약국제를 외면함에 따라 약사회나 지자체, 보건소 등의 홈페이지에 당번 약국을 게재하는 일도 소홀해졌다.

보건복지부 등 행정 당국이 약사회 간부들을 통해 당번약국제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래도 잘 안된다. 그렇다면 보완책으로 슈퍼마켓에서도 간단한 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아니면 시민 건강 확보 차원에서 정부가 무엇인가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지 열어 놓지도 않는 당번약국제로는 안된다. 권유사항, 자율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 행정사항이 된다면 당번제약국이 운영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주5일 근무제로 놀기만 좋아하는 이런 사회에서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아야 하는 게 가장 상책이다. 어쩌다 일요일에 열려 있는 약국이 눈에 띄면 급하게 약 살 일이 없는 데도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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