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런 말들을 안하면 좋겠다. 이성이 아닌 감성에 치우친 언사는 듣기에도 거북하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노동권 유린, 노동계 탄압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이성적 대처라고 할 수 없다. 집단행위로 저지른 불법에 귀납되는 응징을 노동권 유린이니, 노동계 탄압이니 한다고 해서 그렇게 곧이 곧대로 들을 민중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근래엔 두 노총이 강성 경쟁 양상으로 치달은 감마저 없지 않았다. 상급 노조의 그같은 무모한 영웅심리가 일선 노조와 조합원들을 얼마나 희생시키고 또 피곤하게 했는가 하고, 한편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사회생활 중 개인 간에도 불법으로 피해를 끼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진다. 하물며 거대한 조직과 힘을 지닌 노동계의 불법행위엔 더 말할 게 없다. 국가사회와 기업에 법 절차을 일탈한 치명적 손상을 입히고도 부득이하다고 보는 독선적 사고는 심히 더 이상 용납하기가 어렵다. 노동계 지도부가 흔히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기가 어렵다고들 말하는 것은 강변이다. 노동관련 법규가 국제수준인 것은 객관적 정평이다. 국가 정책에 물리적으로 항거하고 기업 자본에 직접적으로 간여하러 드는 노동운동의 궤도 이탈, 노동혁명이 아니라면 법질서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노조활동이 또 민생경제 위협에 대해 인내성의 한계를 넘어서면 공연한 집단이익으로 변질된다.
그렇다고 노조의 무력화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의 오만에 부단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건강한 노조활동, 건실한 노동운동으로 근로자의 권익이 신장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떼를 쓰기보다는 매섭게 따져가며, 법질서를 지키는 것이 진정 힘있는 노조활동이고 노동운동이라고 믿는다. 노동법률문화가 서릿발처럼 살아있는 마당에 노동운동의 상투적 전투 태세가 과연 이 시대에 맞는가도 고려해 봐야 한다. ‘쟁취’의 용어 같은 살벌한 연출보다 ‘협상’의 개념으로 강인함과 유연성을 살리는 시대적 전환을 촉구한다.
아무튼 신 노사문화 정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영·미식이냐 유럽식이냐 하는 것은 더 두고 논의돼야 하겠지만, 이제 ‘한국식’은 어떻게든 탈피해야 하는 것만은 부인될 수 없다. 양대 노총의 용기있는 도덕적 각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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