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결산안 부결

한나라당이 국회 사상 처음으로 한국방송공사(KBS) 2002년도 결산 승인안을 부결시킨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케 한다.

한 가지는 KBS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질책이다. 긴급시 사용돼야 할 예비비 112억원을 직원 성과급으로 나눠준 사실이다.

1인당 연간 부가가치 생산액도 경쟁사의 50~60% 수준에 불과했다. 비슷한 사례를 해마다 지적했으나 시정되지 않았다. 지난해 채택한 시정요구서는 닲예비비의 적절한 사용 등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기록할 것 닲퇴직급여충당금 및 인건비성 지출의 감소를 통해 재무구조 건전성을 확보할 것 닲수입 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것 등 이었다. 하지만 KBS는 국회의 잇따른 시정 조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건비성경비 지급에 예비비를 사용했다. 시민단체와 학계 등에서도 “지금까지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지적한 KBS의 문제점이 결산안 통과 이후 시정된 적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한나라당이 본격적으로 KBS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다. 국회 문광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산안을 한나라당이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이고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는 것이다.

정연주 사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최근의 프로그램 개편 내용 등에 대한 불만때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특히 대선패배의 원인이 방송에 있다고 보고 지난봄 방송위원 선임 때 언론·시민단체 쪽의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지상파 3사 출신을 고루 내놓은 한나라당 쪽의 방송관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언론노조·한국방송·문화방송 노조, 한국방송 PD협회, 민주언론운동 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낼만 하다. “한나라당이 방송 길들이기에 나선 가운데 이번 건은 본때 보이기 성격이 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가 요구한 시정사항을 이행치 않은 KBS에도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원 수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한나라당의 발상 역시 온당치 못하다.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이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잊어서는 안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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