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대필

소문으로 끊임없이 나돌던 서예계의 ‘대필 비리 ’가 또 발생했다. 지난 1993년 서예대전 비리의 복사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착잡하다. 이번에 비리가 드러난 대한민국 서예대전과 대한민국 서예전람회는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와 한국서가협회가 각각 주최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서예공모전이다.

198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없어진 뒤 매년 봄·가을로 주최돼온 이들 공모전은 전체 출품작품수의 20 %를 입선작으로 뽑고, 입선작의 10 % 내에서 특선을 뽑는다.

현재 서예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대학에 설치 학과가 거의 없고 서단에 등단하는 데도 공모전이 유일한 인증방식이다. 더구나 이들 공모전에서의 입상 실적에 따라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으로 신분상승은 물론 개인서실을 열 수 있다.

출품자가 심사위원의 제자로 들어가거나 심사위원의 작품을 고가로 매입하는 먹이사슬 관계가 근절되지 않는 큰 이유다.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공모전을 열면서 주최측 주요 인사가 돈을 받고 글씨를 대신 써주고 게다가 그 작품을 입상작으로 선정한다니 서예의 기본정신 파괴는 물론 ‘서예가를 팔고 사는’ 일탈행위 아닌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욕을 그래서 먹는다. 이들은 또 출품작을 대필, 심사등을 하면서 입상작 수백여점의 표구 제작 소개료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집행부와 친분이 있는 특정작가 중심으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니 입선자 명단에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일부 출품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자주 선정되는 작가들을 미리 찾아가 그들의 작품을 사주거나 향응을 제공했는데 안되면 이상한 일이다.

지금 한국 서단에는 전국적 또는 지방적인 공모전이 상당수에 이른다. 문제는 이번 파문으로 인해 다른 서예공모전도 의혹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일부 서예가들의 제자 챙기기와 인맥 확장, 심사위원과 출품자의 결탁,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가 투명하고 공개적이지 못하면 한국 서단의 오명은 씻겨지지 않는다. 서단의 뼈 아픈 자체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